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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May 14. 2024

암하세천달해의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오랜만에 어릴 적부터 살아왔던 서울 본가에 들렀습니다. 서대문 한복판에 있는 오래된 한옥집입니다.

마당을 서성이다 우연히 집 기둥에 붙은 현판을 봅니다.

기둥마다 한자로 흘려쓴 현판이 붙어있었는데, 당연한 집의 한 부분이려니 하고 살면서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붓을 들며 글자에 관심이 생기고 나니 현판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잔뜩 흘려 멋을 낸 글씨들인데 읽히기도 하고 잘 안 읽히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좋은 한시 시구절이었습니다


그중 하나의 문장을 그려봅니다

'岩下細泉達海意 암하세천달해의

庭前半樹衡天心  정전반수충천심

바위 아래 샘물도 바다로 갈 뜻을 가지고 있고

뜰 앞의 작은 나무도 하늘을 찌를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는 멋진 문장입니다.

어쩌면 작은 집이기에 더 어울리려나요.

철 없이 펄떡거리며 뛰던 젊은 시절에, 아침저녁 마루를 드나들며 보고 마음에 새겼으면 뭔가 더 큰 뜻을 품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우연히 발견한 고시 한 구절을 읽으면서 지난 세월을 천천히 돌려보며, 그 멋스러운 필체는 따라 하지 못해도, 이제야 그 뜻은 한번 담아보려는 마음으로 붓을 적셔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추억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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