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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 -김경근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얘들아

이젠 떠날 시간인가봐


이제 더이상 이곳은

너희를 기억할 사랑도 없고

이제 더이상 이곳은

너희를 기억할 가슴도 없고

이제 더이상 이곳은

너희가 알던 그곳이 아닌가보다


이제 이곳은 모멸의 땅이 되고

이제 이곳은 무도의 땅이 되고

이제 이곳은 수치의 땅이 되어

어쩌면

고래를 타고 천개의 바람으로 세상을 나는

너희들이 오히려 자유로울듯하다.


얘들아

부디 우리 대신

넓은 세상을 날아다니렴.

얘들아

부디 우리 대신

자유의 세상을 즐겨주렴.

얘들아

아직도 갚지못한 그 날의 마음은

이제는 우리의 짙은 부끄러움으로 남아

이 질곡의 땅을 자초한

우리 몫으로 대신해야겠다.


얘들아

미안하다


풍월 風月 -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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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꼴통이라 생각하는 이가 여럿 있습니다.

그 꼴통 중 한 명이 장관 내정이 되었습니다.

그 자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붉은 유산이 된 세월호 추모 공간은 이제 재미 봤으면 치우라'고요.

이 자의 사람 못됨은 이미 오랜 세월 봐온 터이니 얘깃거리도 안되지만, 이런 인물을 장관으로 임명하려는 이 권력의 무능과 뻔뻔함과 무책임으로 이제 이 나라의 시스템은 나락으로 치닫습니다.


매 순간이 부끄럽습니다

매 순간이 참담합니다

매 순간이 황당합니다.

폭염의 여름 불쾌지수보다 더 기분 나빠 애써 세상을 안 보려 합니다만, 또 붓을 들고야 맙니다.


다시 나라를 잃은 느낌입니다.

다시 식민의 세월이 된 느낌입니다

다시 독재의 어둠이 낀듯한 느낌입니다.


다시 촛불을 들기 전에

다시 횃불을 들기 전에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인사를 하고 놓아주어야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기억을 묶어 놓기엔 이제 이 땅이 이 나라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의 땅을 떠나, 무간지옥의 땅을 떠나,

천 개의 바람은 이제 세상을 돌게 해야겠습니다.

더운 여름 바람에 눈물마저 말라버리는 요즈음입니다.


세상 이야기를 쓰면 너무 속이 상해 종종 행간에 녹여놓았더니, 모호한 이야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대놓고 소리 한번 지릅니다.

'예라이, 나쁜 놈들아..'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에 고요한 평화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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