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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Dec 11. 2018

그날 - 곽효환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그날 / 곽효환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수가 없어 그대로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것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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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집니다

환절기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겨울의 찬 바람 때문이라고, 일찍 온 노안 때문이라고 이리저리 핑계를 찾아보지만, 멀쩡한 오후 텔레비전의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도 눈물이 나는 걸 보면 딱히 저런 원인들 때문만은 아닌 듯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저 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울컥 울음이 터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는 데에도 오래 걸리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슬픔이던, 기억이던, 아픔이던,

또는 먹먹한 그리움이던,

우리에겐 그런 날이 있을 겁니다


무심한 저녁, 밥 숟가락을 들다가,

멍하니 텔레비전의 소리를 듣다가,

앞 마당에 시든 꽃가지를 보다가,

지난 달력을 넘기다가,

무심코 꺼내든 책 속에 끼워진 오래된 낙서를 보다가,

울컥 그렇게 눈물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눈물은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견디고 겪으며 버텨 온 나를 보고 흘리는 눈물일지도요

그 세월에 같이 한 너를 그리며 흘리는 눈물일지도요

그 시간속에 묻혀진 그들을 안타까워하며 흘리는 눈물일지도요


이제는 뻑뻑해진 건조한 눈에 흘려지는 이 눈물은 오히려 고마움일까요

아직도 가슴에 온기가 남아있음에 감사함일까요

저무는 한 해에 그렇게 눈물 한 방울 더 해봅니다


세상 모든이들의 따뜻한 가슴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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