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루카복음 6.41~42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네이버 포스트에 '겨자씨 묵상 한 톨'이란 꼭지를 따로 연재한지 벌써 삼년반이 지나는가 봅니다.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은 매일 쓰지만 이 꼭지는 주일마다 한 편씩 쓰니 그간 160여개의 포스트를 어림 잡아보니 벌써 이렇게 세월은 흘렀습니다.
처음 이 꼭지를 열면서는 한없이 내려주시는 은총에 감사하고, 주시는 평화를 조금이나마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시작하였습니다만, 지난 세월의 포스트들을 보면 어쩌면 때로는 알량한 재주에 교만 가득한 치기와, 되도않는 훈계와 선도는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미사중에 '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라는 말씀에 철렁이는 가슴을 보듬어봅니다.
어쩌면 정작 내 눈의 커다란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에 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는 나를 말씀하신건 아닐까 반성해 봅니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입니다.
어쩌면 세상의 미세먼지보다,
그 분의 말씀을 담아놓을 내 마음의 유리잔에 더 뽀얗게 교만의 먼지가 앉아있지는 않은지,
그 분을 바라보는 내 눈에 자만의 그늘이 끼어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사순을 바라보는 오늘,
내 눈의 먼지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그 티끌을 닦아낼 수 있는 용기를 간구하며, 조용한 참회의 기도를 올려봅니다.
세상 모든이들의 평화로운 마음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