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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Mar 16. 2019

흰 바람벽이있어 - 백석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 흰 바람벽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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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그려봅니다.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그에게 흰 바람벽은

추억을 비추는 스크린인가봅니다

시퍼러둥둥 추운날, 무이며 배추를 씻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린것을 끼고앉아 대구국을 끓여먹는 아내가,

그의 흰 바람벽 스크린엔 그렇게 비추입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며

그의 쓸쓸함을, 그의 외로움을 흰 바람벽을 보며 달래봅니다.


봄이 오늘 길목에서 당신은,

당신의 흰 바람벽엔 무엇이 비추이나요

당신의 흰 바람벽엔 누가 떠 오르나요

꽃 바람 불고,

초록 바람 흩날리는 봄의 초입에서

당신의 흰 바람벽에도

꽃이 피고

초록이 오르고

반짝이는 햇살의 그림자가 눈을 부시게 하는

그런 날이길 기원해 봅니다.


세상 모든이들의 평화로운 하루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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