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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Sep 25. 2019

산 - 김광섭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 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 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高山)도 되고 명산(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김광섭 -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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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엔 기온이 훌쩍 서늘합니다.
걸어놓은 긴 팔 옷에 눈길이 가고,
내려놓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게 되는 아침입니다

마당에 나서니 풀들이 자라는 속도도 계절을 따라 늦어집니다.
제주로 떠나기전 깍고 간 풀들이 오늘 돌아보니 그리 자라지 않은걸 보면, 이젠 이렇게 여름은 지나간게 맞나 봅니다.
계절은 점점 그렇게 가을로, 겨울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나봅니다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고, 오름을 보았던 제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의 이곳에서 김광섭 님의 산을 그려봅니다.
남쪽과는 달리 이쪽엔 이곳저곳 산봉우리가 보이고 계곡이 보입니다.
계절따라 날씨따라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산입니다.
그렇게 사람닮은 산을 보면서
시인은 이리 이야기합니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그런거보면 저 높이 솟은 산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하늘과 이야기하러,
깊이 내린 계곡은 물과 노닐어보러 그리 솟고 깊어진건가 보네요.

하늘은 높아지고, 산도 맑은 오늘입니다
어쩌면 산이 사람같은게 아니라 우리네 사람이 산을 닮아가야 하는게 맞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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