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 올라보니 온갖가지 술을 놓고 기생첩을 옆에 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건넌방에 내려와서 아홉가지 약을 먹고 비단 석자 베어 내어 목을 매어 죽었더라
진주낭군 이말 듣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내 이럴줄 왜 몰랐던가 사랑사랑 내 사랑아 화류계 정 삼년이요 본댁의 정 백년인데 내 이럴줄 왜 몰랐던가 사랑사랑 내 사랑아
너는 죽어 화초되고 나는 죽어 나비되어 푸른 청산 찾아가서 천년만년 살아보세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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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시절에 서클룸 - 그 당시엔 지금의 동아리방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통기타 옆에 끼고 흥얼거리던 노래 중 하나입니다. '타박네야'를 부르고 이 '진주난봉가'를 부르면, 우울하던 시절, 막막하던 시절, 젊은 청춘들의 먹먹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을까요. 그땐 왜 이리 처량한 노래들을 불렀던지요.
오랜만에 진주난봉가가 생각이 났습니다. 가사도 제법 길어 다 기억하기도 힘들었지만, 요즘 검색이 좋다 보니 가사며 노래도 새록새록 다시 들을 수 있네요. 전문을 다 쓰려 붓을 들었다가, 가사가 길어 끝 부분 한 구절만 썼습니다만, 제게 진주난봉가는 '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네요.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면 그 시절 며느리들의 답답한 생활상이 보이는 듯합니다. 암울하던 시대에는 기다리던 진주 낭군이 화류계 정에 맛 들여 흥청망청 보내는 것이, 민주화를 기다리던 청춘들에게 보인 기성세대의 나약함을 빗대고 싶었을까요. 그 시절 막걸리 한잔에 숱하게 젖어가던 노래입니다.
그렇게 가슴을 두드리며 열정을 토하던 이들도, 세상의 답답함에 뛰어들던 이들도, 이제는 세월이 흘러 각자의 자리에서 꽤나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습니다. 광장의 함성 속에서, 시끄러운 논쟁 속에서 어쩌면 지난 세월의 그 뜨거운 청춘들이 진주 남강에 돌아온 진주 낭군의 모습으로 변해있지는 않는지, 진주난봉가 가락 한줄기 흥얼거려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