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세월이 그럽디다
어딜 그리 급히 가냐고
어디로 그리 달려가냐고
무장무장 짙어가는 회색으로 허리춤을 잡으며
뭐가 그리 급했냐고
뭘 보고 달렸냐고

세월이 그럽디다
오늘은 안개라고
내 품에 안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쉬어 가라고
보고 가라고

꼭 쥔 손아귀 힘 빼라고


안개 -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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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가 부스스한 눈을 한번 더 비비 게하는 아침입니다.
매양의 햇살도 아닌,
모양의 낮은 하늘도 아닌,
온몸을 덮어주는,
온몸을 잡아주는 그런 안개 아침입니다.

오히려 안갯속에선 사물이 더 명확해지는 건 역설일까요.
그저 스치던 풍경도,
그저 거기 있던 사물도
안갯속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 시선을 멈춥니다.
안개 덕분에 천천히 걷습니다
안개 덕분에 자세히 봅니다
안개 덕분에 알게 됩니다.

살다 보면 때론 그렇게 삶에도 안개가 끼더군요
이리저리 살아오며 달려가고 부딪히고 부대끼던 어느 날에,
안개처럼 덜컥, 어쩔 줄 모르게 하는 때도 있더군요.
항상 있던 그 길도 여기가 맞는지,
같이 가던 그 사람도 옆에 있는 건지,
내가 온 길이 맞는 건지,
세상은 뽀얗고,
발걸음은 무겁고,
지금 나는 여기서 무얼 하는 건지,
불현듯 세상에 나 혼자인듯한,
그런 날도 있더군요.

하지만 때론 그런 안개가,
삶의 속도를 조절해주기도 할 듯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리던 나를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면,
온전히 나만 볼 수 있습니다.
속도도 의미 없고,
치장도 의미 없고
오로지 나만 볼 수 있는 안개가
긴 달리기에 헐떡이던 우리 호흡을
조용히 천천히
가라앉혀 주기도 합니다

오늘이 안개 같은가요.
그러면 잠시 멈춰보세요
안개가 내게 무얼 이야기하는지
안개가 내게 어딜 가라 하는지
안개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안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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