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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n 22. 2018

봉우리 - 김민기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봉우리 / 김민기


 

어린시절 제가 자라고 놀던 곳엔 금화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었습니다.

서울 서대문 한 복판의 작은 산이었지만, 제게는 아주 높고 커다란, 곳곳에 동굴도, 약수터로 이어지는 멋진 길도, 전쟁 놀이하며 숨을 요새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다 돌 수 없을 정도의 그런 큰 산이었습니다.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 찾아 본 그 산은, 이미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 숲 속에 산은 가려져 버리고 도로와 건물로 산의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죠.

재개발이 되어 그 산의 모습을 볼 수 없는게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면 훌쩍 커버린 제 현실의 눈으로 그저 작은 산으로 치부되기 전에, 영원히 제 가슴속에 큰 산으로 기억될 수 있음은 한편으론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북한산 자락의 산이니 작은 산은 아닌지도 모르겠네요.


김민기의 봉우리를 듣고 그려보며 생각해봅니다.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곳이 그 산의 전부가 아니었듯,

우리가 바라보고 달려가던 그곳도 유일한 봉우리가 아님을 이야기 해줍니다.

봉우리만을 향해 달려가는 오늘의 우리들,

봉우리에서 서서 환호하고,

그러다가 그 뒤로 이어진 다른 봉우리로 가야하는, 밀려가는 그런 우리들,

고갯마루에서 헛헛하게 땀을 식히며 정작 가야할 곳은 봉우리가 아니고 저 낮은 곳의 바다였음을 깨달았을땐 이미 세월이 흐른 후 임을,

그럼에도 이 봉우리로 계속 올라오는, 밀려오는 사람들을 보게됨을.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살아가며 깨닫게 되는가 봅니다.


오늘은 어느 봉우리를 올라가고 있나요

오늘은 어느 고갯마루에서 한 숨 돌리고 있나요

가끔은, 돌아보고 내려보고 한 숨 돌리고 쉬어보자구요

힘들면 쉬어가고, 외로우면 같이 가자구요.

지금 잠시 앉은 바위옆에, 못 보고 스쳐갈 꽃들이 당신을 보며 활짝 피었을지도 몰라요


한주의 마무리 금요일,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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