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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n 25. 2018

풀 - 김수영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 풀


오랜만에 김수영님의 풀을 써봅니다.

비가 오던 시절,

바람이 불던 시절,

둔탁한 무거운 발자국에 밟히던 시절,

그저 짧은 풀로서

그저 엎드린 풀로서

그렇게 읽으며 외우며 마음을 달래던 글이었지요.


계절이 바뀌듯 세월은 흐르고,

날씨가 바뀌듯 세상은 변하고,

풀은 여전히 자라납니다

긴 풀은 자라고 시들어가고

그 풀이 씨를 뿌려 새 풀이 돋고,

그렇게 그렇게 풀밭은 넓어 지는건가 봅니다.

비에 쓸리고 바람에 누여져도 잡초는 , 풀은 그렇게 살아왔나 봅니다

때론 작은 들꽃도 피우고, 때론 얼키설키 타들어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풀은 뿌리를 내려가나 봅니다.


화려한 꽃밭이 주목을 받을 때에도,

멋진 나무들이 솟아오를 때에도

풀들은 그렇게 낮은 곳에서 뿌리내리며, 세월을 보며 그렇게 살아가나 봅니다.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풀들이 반갑습니다

세월을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풀들이 정겹습니다

유월의 바람과 햇빛아래,

고개 내밀고 꿈틀거리는 세상의 모든 초록 풀잎들을 응원해보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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