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라면 Sep 15. 2020

노모의 한가위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제겐 노모가 한 분 계십니다.
올해 여든여섯살이시니 노모이긴 합니다만
저에겐 여전히 '엄마'입니다.
지난 주말, 어머니 생신이라 형제들이 모여 간단히 식사를 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조용히 식사만 하는일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이젠 이곳 저곳이 불편한 몸이시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밝은 모습을 뵈니 코로나 시국에 생기던 건강걱정에서 마음 한 켠이 살짝 가벼워집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이번 추석 모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찌 준비할까 이야기 나누려던 참에 불쑥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내십니다.
'올해 추석은 각자 집에서들 지내라. 시국도 어수선한데 멀리 왔다 갔다들 하지말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보다도 더 개방적이시고, 깨인 사고 방식을 가지신 분이시라 평소에도 이야기를 나눌때마다 몇번이고 놀래곤 했었는데, 이번 지침은 사뭇 더욱 파격적인 이야기셨습니다.
오히려 자식들 입장에서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는데 말입니다.
잠깐의 당황스러운 정적이 지나고, 다들 어머니 의견에 공감하며 그러자 했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생각해 봅니다.
그나마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어야 시끌벅적 모여 떠들 자식들이나 손주 손녀들 보는 재미를 기다리실 노모의 입장에서, 이번 명절을 넘기자는 결정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겁니다.
그 분이 보기에도 조금 더 조심해야 될 시기라 생각이 드셨나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렇듯, 학교 배움은 짧아도 삶에서 우러난 지혜와 배려에 다시 한번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 와중에 여전히 다음달 10월, 추석 끝무렵에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겠다는 철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들립니다.
독자분들중엔 안 계시겠지만, 혹시라도 그 곳에 갈 계획이 계시거나, 그런 분을 아신다면 한 말씀만 전해 볼까 합니다.
각자의 이념과 정치 성향은 존중하겠지만, 공동체를 위해서 앞으로 몇 번 남지않은 명절마저 포기하신 우리 노모의 귀한 결정을,
세상 구석구석에서 이런 모습과 마음을 갖고 계신 대부분의 참어른들의 마음을 희석시키지는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말이죠.

이번 한가위엔 모두 참 어른이 되면 좋겠습니다.
계절 모르는 철부지가 아니라,
세상 시끄럽게하는 불한당이 아니라,
제 욕심에 눈이 멀고,
제 망상에 귀가 먼
허수아비같은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의 세월을 돌아보는 참어른이 말이죠.

하루하루 짙어지는 세상 모든 이들의 지혜와 용기를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매거진의 이전글 원격강의 사전도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