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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an 19. 2021

퇴근길 - 안도현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안도현 님의 두 줄짜리 시입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그냥 이 두줄만으로도 많은 마음이 들락거립니다.
많은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이 '퇴근길'입니다

이 짧은 두줄의 시를 읽으면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술을 좋아하시던 우리 아버지의  퇴근길은 항상 찌든 기름 냄새와 소주 냄새였습니다.
어린 시절엔 그런 아버지의 술 마시는 모습이 참 싫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니,
그런데 이제 이렇게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 시절의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그랬나 봅니다.
그 시절,
삶의 막막함과
삶의 무게와
내세울 것 없는 범부의 퇴근길은
그랬을 겁니다.

누구에겐 즐거움일 수도 있고
누구에겐 외로움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겐 희망일 수 있고
누구에겐 절망의 저녁일 수도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도
여전히 우리의 퇴근길 어느 골목엔
그렇게 삼겹살 한 조각
소주 한잔으로
오늘 하루를 삼키고
간신히 내일을 만들어내는
그런 취한 저녁 있을 겁니다.

그 모든 흔들리는 마음에
술 한잔 따라봅니다.
어깨 한번 툭 부딪혀 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편안한 퇴근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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