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공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담배를 끊으시려 은단을 자주 드셨다 붉은 마리화나를 피우던 나무들이 금단현상인 듯 잎을 떨구고 있다 빈 가지에 맺힌 은단 같은 서릿발
세상과 세상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점들이 무수히 깔려 있다 한때는 불꽃의 사금파리였을
오십 넘어 노안은 찾아오고 멀리도 가까이도 볼 수 없는 지점의 눈 감으면 선명해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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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바꿨습니다. 그간 쓰고 있던 안경이 자꾸 뿌옇게 느껴지는 게 안경알에 흠집이 많아져서인가 싶어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새로 맞추었습니다.
검사를 해보니 안경알이 흐려진 게 아니라 시력이 한 단계 더 내려갔습니다. 애꿎은 안경 탓만 했습니다. 글도 쓰고 글씨도 쓸 때마다 안경을 쓰고 벗는 것이 불편해 누진다초점으로 렌즈는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도수마저 바뀌니 일주일째 새 초점에 적응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여전히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이리저리 편한 시야를 찾아봅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멀리도 가까이도 볼 수 없는 지점'의 그것들이 늘어나는가 봅니다.
보이는 것만 그럴까요. 세월이 흐르며 내 마음속에도 '멀리 할 수도 가까이할 수도 없는, 눈 감으면 선명해지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납니다.
안도현 시인은 오십 줄 넘은 그 나이가 그렇다 합니다.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애욕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눈감으면 선명해지는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 시에서 나이를 만나면 서러워진다'라고 합니다.
다초점이니 새 렌즈니 하며 세상을 내 시선의 초점에 맞춰보려 하지만, 정작 흐려지는 건, 정작 초점 맞추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세월의 경계선에서, 마음의 경계선에서, 하나 둘 늘어가는 '멀리 할 수도 가까이할 수도 없는 것들' 때문이 아닐는지요
짐짓 새 안경을 닦아보며, 안경 탓을 해 봅니다. 초점이 안 맞는 것은 내 서릿발 내린 세월 탓이 아니라, 안경 탓이라 하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