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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Jan 15. 2023

고토열도 일주기 - 일본의 기독교 성지 답사기 (7)

카이즈교회 (貝津教会)와 이모치우라교회 (井持浦教会)

미치노에키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며 쉬었습니다. 다행히 비는 많이 잦아 들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미치노에키에서 나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지도를 보니 카이즈교회カトリック貝津教会는 숲속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맵 코드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미치노에키로 다시 들어가 안내소에서 설명을 듣고 약도까지 받았습니다. 교회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으나 진입로가 좁은 산촌에 있다 보니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 주위는 온전히 숲입니다. 숲과 조화를 이루어서 그런지 마음이 평안해지고 차분해집니다. 

내지 오무라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이 모여 살던 마을 후쿠에의 다케야마竹山 에는 잠복 키리시탄이 많았습니다. 키리시탄은 불교신자 행세를 하며 다른 이주민과 함께 섞여 들어왔다가 점차 모여 살며 잠복 키리시탄 마을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발되는 일이 일어났고 결국 많은 키리시탄들이 투옥되고 심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이때가 1868년 메이지유신 때이니 금교에 따른 박해가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이후 다케야마를 중심으로 40 가구의 키리시탄이 중심이 되어 1924년 카이즈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노후로 1962년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당 주변은 화단이 잘 정돈되어 예쁜 꽃들이 이 마을 소녀 같이 수줍게 피어있습니다. 150년전만 하더라도 마을의 키리시탄 주민들이 고문 받고 옥사했었다는 사실을 마치 잊기라도 한 것처럼.

이동 노선입니다. 오른쪽부터 쿠스하라교회, 미치노에키 견당사 후루사토관, 카이즈교회, 이모치우라교회입니다. 후쿠에섬은 생각보다 커 이동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걸렸습니다. 카이즈교회에서 한 시간 이상을 달려 이모치우라에 닿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카이즈교회 예배당입니다. 교회는 적막에 둘러 쌓인 숲속에 있어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카이즈교회 전경입니다. 1924년 목조로 만들어졌습니다. 노후화에 따라 1962년 개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흰 색 외벽에 목조로 지붕을 얹었습니다. 낮은 첨탑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카이즈교회 최대의 특징이자 자랑으로 일컬어지는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글라스를 막는 장애물이 없고 건물의 측면이 동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어 햇살이 온전히 예배당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햇살은 교회안을 포근하게 감싸는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린 직후라 햇살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글라스로 투과되는 햇살은 충분히 짐작이 되었습니다. 


카이즈교회를 뒤로 하고 이모치우라교회井持浦教会로 향했습니다. 후쿠에시마가 크다고는 들었지만 낙도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냐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 니다. 국도를 한시간을 넘게 달려 겨우 닿았습니다. 후쿠에시마에 대해 전혀 몰랐을 때 자전거를 렌탈하여 섬을 일주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 었는지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가는 길은 해안에 면한 도로가 많은데 무척이나 한적하고 평화스러워 보였습니다.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가 보일 뿐 행인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산에 면한 도로가 나올 때면 혹 멧돼지라도 달려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 다. 한참을 달린 끝에 겨우 이모치우라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운전 거리가 길게 느껴진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교회가 섬의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의 끝 부분에 자리 잡아 물리적으로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섬 가운데서도 오지에 속하는 이러한 위치가 오히려 잠복 키리시탄을 살린 것 같습니다. 워낙 오지에 있다 보니 메이지시대 초기 키리시탄 박해의 광풍울 비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박해를 피한 잠복 키리시탄 마을입니다. 이모치우라교회는 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 1897년 지어졌고 1924년과 1988년에 증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모치우라교회 가는 길에 만난 해변입니다. 늦여름의 여유로움이 묻어 납니다. 해변을 걷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동화책 속애서나 나올법한 예쁜 집이 해변 옆 산자락에 있습니다. 펜션으로 보입니다. 

가늘고 길게 뻗은 반도의 끝부분에 숨은 듯 위치해 있었던 덕분으로 잠복 키리시탄은 박해를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이모치우라 역시 오무라에서 이주해온 잠복 키리시탄이 모여 이룬 마을입니다. 

1897년 지어진 고토 최초의 벽돌로 지어진 교회당으로 출석 신자수가 늘어나자 1924년 증축했고, 노후에 따라 1988년 개보수를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배당은 고풍스러운 외관에 비해 무척이나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모치우라교회 영내에 일본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루루도의 샘’이 있습니다. 1895년 페르신부 주도로 고토 각지의 암석을 선별해 1897년 완성하였습니다. 

루루도Lourdes란 원래 프랑스에 있는 마을의 이름입니다. 1858년 베르나데트 수비루라는 소녀가 루루도 산속에서 동굴을 발견했는데 그 동굴에서 성모 마리아를 만났다고 합니다. 동굴의 이름을 ‘기적의 동굴’, 이때 만난 성모 마리아를 ‘루루도의 성모’라 불렀습니다. 모두 18번에 걸쳐 수비루는 성모 마리아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성모의 얘기에 따라 동굴 안 흙을 걷어내자 샘물이 나왔습니다. 샘물을 마신 수비루는 지병인 천식이 나았고 사후에도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7,000명의 환자가 치료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리아를 만난 수비루는 수녀가 되어 평생 마리아를 섬기며 살았습니다. 프랑스 정부와 교회는 이 지역을 성역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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