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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Jan 14. 2023

고토열도 일주기 - 일본의 기독교 성지 답사기 (6)

쿠스하라교회 (楠原教會)와 견당사 후루사토관 (遣唐使故郷館)

다시 차를 몰아 쿠스하라교회カトリック楠原敎會로 향했습니다. 미즈노우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습니다. 비는 다행히 좀 잦아 들었습니다. 쿠스하라 마을은 미즈노우라 마을과 마찬가지로 오무라大村에서 이주해온 잠복 키리시탄이 모여 살며 이룬 마을입니다. 이들은 불교신자로 위장하여 오무라를 떠나 고토로 들어왔습니다. 정착하고 생활이 안정되자 점차 키리시탄이라는 소문이 은밀하게 퍼지게 됩니다. 비밀리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신앙은 대를 이어 세습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해금이 되자 이들은 양지로 나와 교회를 짓게 되는데 그 교회가 쿠스하라교회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테츠카와 요스케의 설계로 1912년 지어졌습니다. 도자키교회와 함께 후쿠에의 기독교를 오랫동안 지켜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로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강건함이 느껴집니다. 

이어 성지는 아니지만 견당사遣唐使 후루사토관故郷館을 견학차 찾았습니다. 일본은 고대에 한반도의 백제로부터 문물을 수입하다가 중국으로부터 직접 수입하고자 중국으로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당나라로 보낸 사절단은 견당사遣唐使, 수나라로는 견수사遣隋使라 부릅니다. 고토는 견당사의 중간 기착지로 병참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해당하는 미치노에키道の驛에 있는 작은 기념관인데 실제 볼만한 기념물이 별로 없어 실망스러웠습니다. 실제 사용했던 유물은 전무했고 모형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위쪽 미즈노우라교회를 출발하여 아래 쿠스하라교회를 방문하고 왼쪽 미치노에키 견당사 후루사토관을 찾았습니다

1912년 3년간의 공사 끝에 붉은 벽돌로 지어졌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후되어 1968년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모고토 최초의 교회인 도자키교회의 건축이 1907년이니 쿠스하라교회는 시모고토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교회가 됩니다.

금교의 시대에는 쿠스하라 기독교 지도자의 집을 감옥으로 개조하여 키리시탄을 투옥하고 고문하기도 했습니다. 감옥은 후에 미즈노우라로 옮겨갑니다. 해금이 되자 키리시탄들은 풀려나고, 이곳을 떠나지 않고 남아 신앙을 이어 갔습니다. 쿠스하라교회는 이들 키리시탄의 신앙심이 탄생시킨 기독교 부활의 상징입니다. 

아래의 흑백사진은 1966년의 쿠스하라교회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교회 어린이 놀이터의 그네가 정겹게 보입니다. 사진 속 그네 타는 소녀들과 뒤에 앉은 교복 입은 소년들은 지금은 중장년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방문하던 날 교회 영내에서 한 커플의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자신들은 나가사키에 사는 직장인이라고 하며 휴가를 이용해 고토의 성지를 순례중인 키리시탄이라고 합니다. 짧게 스쳐간 만남이었지만 순례하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숭고해 보였습니다. 

휴게소인 미치노에키道の駅입니다. 이 휴게소 건물안에 견당사遣唐使 후루사토관故郷館이 있습니다. 견당사는 서기 630년부터 260년간 18회 당나라에 파견되었습니다. 목적이 당나라로부터 선진 문화와 문물을 수입하는 것이어서 학자와 승려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전 607년 수나라의 문물을 배우고자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했었습니다. 견수사, 견당사 모두 고대 일본인 아스카飛鳥시대에 파견되었고, 목적은 백제로부터의 문물 수입에서 벗어나 중국과 직접 교류하고 수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의 배는 관련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당시의 그림, 중국의 자료를 기초로 만든 상상의 모형입니다. 전시관 중앙에 큰 크기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물은 빈약한데 워낙 오래전의 일이니 남아있는 유물이 별로 없을 것이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검증이 불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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