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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Jan 12. 2023

고토열도 일주기 - 일본의 기독교 성지 답사기 (4)

카톨릭 도자키천주당 (カトリック堂崎天主堂)

세찬 비를 뚫고 페리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자키천주당堂崎天主堂에 도착했습니다. 천주당 건물까지 직접 갈 수는 없고 지정 주차장에 주차한 다음 조금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천주당으로 연결되는 길에 작은 카페가 소담스럽게 있습니다. 천주당의 내부는 자료관으로 운용되고 있어 실제 일요일 예배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월 1회 매월 첫째주 일요일 아침에 예배가 있다고 합니다. 내부 예배당은 자료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아마 전시물 사이에 예배 공간을 만드는 듯합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천주당은 그 역사를 말해주듯 작지만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도자키천주당은 고토 키리시탄 부활의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기독교 금교령이 철폐된 1873년 프레노 신부가 처음으로 도자키천주당이 있는 해변가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렸고 1877년부터는 고토에 상주했습니다. 1880년 프랑스 출신의 마루만신부가 중심이 되어 도자키 임시 교회가 세워졌고, 1907년 페르신부의 주도로 건축되어 현재의 교회가 완성되었습니다. 나가사키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입니다. 마루만신부는 후에 사세보佐世保 앞 바다에 있는 쿠로시마黒島로 부임하여 쿠로시마교회를 설계했고 쿠로시마교회는 잠복 키리시탄 마을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도자키천주당은 건축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1974년 나사사키 중요 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도자키천주당 전경. 붉은색 벽돌로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인근에 전용 주차장이 있어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걷다 보면 천주당 후면부터 보이고 표지목과 매표소가 있습니다. 상주하는 해설사나 안내원은 보이지 않지만 사전 예약을 하면 자원 봉사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내부는 자료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고토의 키리시탄 관련 유물을 중심으로 일본 키리시탄 관련 유물이 다수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내의 외부 공간은 ‘키리시탄 정원庭園‘으로 부릅니다. 왼쪽은 순교자 요한 고토, 오른쪽은 선교사 마루만신부와 페르신부의 동상입니다. 


왼쪽은 성 요한 고토 순교상 ‘수난의 때’입니다.

고토 출신의 19세 청년 키리시탄 요한 고토는 1597년 오사카에서 체포되어 나가사키까지 800Km를 33일 동안 끌려왔습니다. 다른 25명의 키리시탄과 함께 나가사키 니시자카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니시자카는 순교지로 '일본의 골고다 언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죽음 직전 십자가에 매달려 기도하는 순간을 표현했습니다. 

오른쪽은 자유와 사랑의 사자 ‘부활의 여명’ 입니다.

메이지시대에 기독교는 해금되고 서양 선교사들이 고토열도로 들어왔습니다. 왼편이 고토에 최초로 들어와 선교한 마루만신부, 오른쪽이 현존 도자키천주당을 건축한 페르신부 입니다. 가운데 있는 어린이상은 어린이와 여성의 복지 사업에 힘쓴 선교사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알메이다의 선교비 ‘만남의 날’

자비에르의 가고시마 상륙후 17년이 지난 1566년 고토에 포루투갈 출신 선교사 알메이다신부와 히라도 출신의 일본인 로렌조가 들어와 기독교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하는 사람이 알메이다신부,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로렌조,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이 영주 우쿠 스미사다宇久純定, 그 외는 가신들과 가족들입니다.

알메이다는 영주 우쿠 스미사다의 지원하에 기독교를 전도했고 많은 주민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스미사다는 1562년 예수회에서 파견한 일본인 의사 디에고의 치료를 받아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이 되었고, 1566년 입도한 의사이기도 했던 알메이다신부의 치료를 받고 완치되어 본격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스미사다는 1568년 세례를 받고 키리시탄 다이묘가 됩니다. 그의 아들 스미타카宇久純尭 역시 1576년 세례를 받아 세습 키리시탄 다이묘가 되었습니다. 스미타카 시대에는 고토의 후쿠에, 오쿠우라, 무카타 등지에 예배당이 세워졌고 신자는 2천명을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566년 이루어진 주민과 알메이다와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는 이 동판은 고토열도의 주민들이 기독교와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1935년의 도자키천주당 입니다. 이 교회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같은 곳에 서 있습니다. 당시에는 커다란 소나무들이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일요일 예배 전후거나 행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토시 제공 자료)


1904년 페르신부 의해 세워진 고아 육아 시설 자혜원慈惠院 입니다. 1880년 마루만신부가 도자키교회 바로 옆에 지은 시설을 기원으로 합니다.  (고토시 제공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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