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로텍스(Super Rotax)
만년필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중학교에 입학하자 선물로 받은 것 같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연필을 버리고 만년필을 써도 된다는 암묵적 룰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파카(Parker)라는 만년필 브랜드를 중학생 때 만났던 것 같습니다. 집 앞 문방구를 오락실만큼이나 들락거렸고, 거기서 꼭 갖고 싶은 만년필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슈퍼 로텍스(Super Rotax)'라는 만년필입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만년필에 관심을 보이자 문방구 아저씨는 싸게 해 주겠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구입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만년필을 다시 손에 잡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찾기 시작한 만년필도 '슈퍼 로텍스(Super Rotax)'입니다.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만년필 카페에서 수소문 끝에 다시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만년필 몸체는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고, 피스톤 필러(piston filler 잉크 주입방식으로 몸체 자체의 노브를 돌려 잉크를 주입) 잉크 주입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년필 닙(nib)과 몸체 사이가 잘 갈라져서 쓰는 동안 본드도 붙이고 인두질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몸체에 각인된 Super-Rotax가 얼마나 이쁘든지.. 몇 번을 따라 써 본 기억도 있습니다. made in Germany 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어 외제(!)라는 자부심(?)도 줬던 것 같습니다.
특히 놀란 것은 닙이었는데(당시에는 금촉이라고 우기기까지 했습니다), 아주 가늘게 써지면서도 부드럽기는 이를 데 없었습니다. 똥이 철철 나오던 볼펜과 뚝뚝 부러지던 연필과는 비교 불과였습니다. 모든 필기는 이 만년필로 했습니다. 색깔도 다양해서 종류별로 가지고 싶었습니다. 동네 문방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빈티지 취급을 받으며 이베이, 아마존 등에서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만년필을 구해서 쓴 지도 10년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상처도 나고 색도 많이 죽었습니다. 구하려면 또 구하겠지만(지금도 좀 노력을 해야 구하지만) 소중히 오래 쓰고 싶습니다.
저의 만년필 사랑은 '슈퍼 로텍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첫' 경험이 참 중요합니다. 추억이 깃든 물건 하나 있으면 저 멀리 시간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