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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Feb 22. 2021

숫자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피오라몬티, 2015)

숫자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물리학자 켈빈 경(Lord Kelvin)은 '측정할 수 없다면 개선할 수도 없다' 고 했고, 품질 경영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데밍(W. Edward. Deming)은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도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 두 문장은 여러 곳에서 인용된다. 모든 것은 측정 가능할까? 여기에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인슈타인은 '중요한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계산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로렌조 피오라몬티(Lorenzo Fioramonti)가 쓴 '숫자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원제 How Numbers Rule the World)'라는 책은 2015년 출간되자마자 읽었다. 왜 읽었는지는 선명하다. 비영리 부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세상-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사회공헌 예산을 지원해 주는 기업이- 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숫자로 측정하고, 그 가치를 밝히라고 계속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평가, 측정은 중요했고 '숫자' 목표를 제시해야만 기부든, 지원이든, 파트너십이든 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이런 현상은 나만 겪고 있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자본주의 자선사업가들의 힘이 날로 확대되는 현실은 재원과 방식의 관점에서 수치 중심적 비즈니스 마인드가 확대되는 명백한 사례에 해당한다...(중략)... 2003년 켈로그 재단(Kellogg Foundation)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효율성과 시장 점유율을 강조하면서 비영리 분야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공공의 선에 이바지할 자유 공간을 활용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책 p288)



켈로그 재단의 보고서 원본



숫자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잘 알고 있다. 전달하는 의미도 명확해지고, 불필요한 감정선을 타지 않아도 되고, 지식 축적과 확장도 용이하고, 의사결정을 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사회발전에도 기여를 한다. 하지만 그 힘이 너무 크고 확장 일로에 있어 걱정이다. 숫자가 전지전능해지고 있다. 숫자가 우리의 삶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지고 있다.


'독일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숫자를 사회적 삶에 체계적으로 적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숫자가 틀린 것이 아니라 숫자가 진실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다'(책 p274)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양경언 문화평론가는 2021년 2월 19일 자 칼럼에서 "숫자와 기록 사이로는 빠져나갈 수밖에 없을, 오직 살아 있는 순간에만 알아챌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의 팔딱거리는 ‘생애’를 그이들과 관계된 사물을 통해 환기할 때,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떠올릴 수 있다" 고 썼는데, 동의한다.


자유와 비정형적 공간의 확보, 딱 표현할 수 없는 공감의 확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개개인상과 개별성의 무한 존중, 비생산적인 비효율이 가지고 오는 역설적 풍요로움 등이 숫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짜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숫자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구원하지 못할 숫자는 우상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생각만 많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우며, 사전에 인지된 관념에서 사전에 형성된 결론으로 이어지는 그럴듯한 과정을 구성할 뿐이다. 이러한 과정에 깃든 최대의 결함은 논리적 불합리성이 아니다. 그보다 더욱 나쁘고, 문명에 반하는 일은 모든 사물에 가격이 존재하며, 돈이 최고의 가치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슈마허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대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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