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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Feb 25. 2021

투명사회(한병철, 2014)

투명사회는 신뢰사회가 아니라 통제사회다.

'투명사회'(한병철, 2014, 문학과지성사)를 사서 읽은 것은 2012년 출판된 '피로사회'와 2013년 출판된 '시간의 향기'를 읽고 머리 떨렸던 -가슴 아니고-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비영리 활동을 하면서 늘 마주하게 되는 '투명성' 이 약간 짜증 나고 불편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투명성은 좋은 건데 왜 짜증 나고 불편하지? 투명성 때문에 잃는 것은 없나? 어디까지 투명해야 하나? 누가 투명성을 요구할 수 있지? 등등 질문이 꼬리를 물었고, 사실은 딱히 선명한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비영리 활동에 있어서 투명성은 무조건 필요하고 매우 중요하고 최우선 되어야 할 과제니까. 투명성은 논의가 필요 없는 당위이고, 무조건 믿고 따르는 이데올로기가 된 것 같았다.



사실 이 책은 내가 고민하고 있는 '투명성' 과는 다른 '투명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무제한 커뮤니케이션과 무제한 정보 생산 및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사회적인 삶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삶도 전시하고 평가받게 되었다. 저자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자발적 착취를 언급했는데, 이 책에서도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열심히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노출함으로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사실 해가 갈수록 과잉 노출과 소통의 피로도를 느끼고 있다.


'고독은 결핍이 아니다. 현대인들에게는 고독을 가꾸는 능력이 필요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2012, 동녘)이라는 책에서 설파한 내용이다. 온전히 혼자가 되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혼자 있어도 언제나 함께 있고, 함께 있어도 혼자 있다.



투명성은 비교 가능, 평준화, 획일화, 이질성의 제거, 순응에의 강압 등을 가져올 수 있다. 저자는 '투명사회는 동일한 것의 지옥이다'라는 표현까지 쓴다. 투명해지려면 모든 것을 보여 주어야 하고, 보이는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는 전시 사회로 우리를 이끈다. 보이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는 점점 무가치 해지고, 억지로라도 보이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좀 보여줘야지! 쇼잉(showing)!!'


한병철의 책은 문고판 정도의 크기와 분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무게는 상당하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시간을 꽤 많이 들여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을 해야 한다. 나의 일상과 현재에 적용해 봐야 한다.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 책이 어려울 때는 해제가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을 번역한 김태환 교수의 해제를 끝으로 읽어보면 책을 읽으면서 산발이 된 머리에 빗질을 할 수 있다.



"한병철은 모든 것이 겉이 되어가는 사회, 진리는 없고 정보만이 있는 사회, 낯선 타자와 직접 맞닥뜨릴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이 오직 자신에게 익숙하게 길들여진 것만 상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 나르시시즘적 사회의 모습을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느끼게 해 준다"(책,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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