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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Mar 05. 2021

철학자와 하녀(고병권, 2014)

있어줌. 존재가 선물이 된다.

어느 날,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유튜브 영상(https://youtu.be/opL80 vhKHNM)을 봤다. 보호장치도 없이 노동현장에 소모품처럼 쓰이고 있는 청년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제목이 한 동안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학대를 받아 죽은 아이, 방치되어 죽은 아이, 퇴근하지 못한 산업현장의 노동자,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타살을 당한 이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냥 보는 것과 알아보는 것의 차이, 그냥 듣는 것과 알아듣는 것의 차이가 극심함을 확인하는 요즘이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알아보지 못했고, 들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철학자가 있다. 철학적 사유가 일상과 맞닿을 때 성찰의 순간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철학자다. 늘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철학자다. 그는 바로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하는 고병권 철학자다.


겨우겨우 죽어야 존재감이 확인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 아프고, 뭔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무기력할 때 '철학자와 하녀'(고병권, 2014, 메디치)가 생각났다.

'철학자와 하녀'(고병권) p25

'있어줌'. 그저 '곁'에 존재하는 것이 선물이 된다. 있어 주는 것, 곁을 내어 주는 것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것이다. 타자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가능하다. 나를 타자화해서 다르게 바라볼 수 있어야 가능하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철학자와 하녀'(고병권) p133

"교양을 쌓는 호기심이 아니라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호기심.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는' 그런 지식욕.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비판적 사유"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위로받는 철학이 아니라 곁을 줄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한 요즘이다.




고병권 철학자를 내가 일하는 곳에서 연사로 모실 일이 있었다. 첫 미팅 때 나는 이 책을 가지고 갔고, 수줍게(?) 저자 사인을 청했다. "내 맘속에 도덕률을 무너뜨린 저 하늘의 별 빛"이라는.. 글귀를 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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