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함이 감사한 만년필
약간 전국 5대 짬뽕 같은 느낌이지만,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몽블랑 149, 펠리칸 m800, 파카 51을 3대 만년필로 꼽는다. 몽블랑 149와 펠리칸 m800 은 현재에도 판매하고 있는 만년필이라 말 그대로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 하지만 파카 51은 1970년대에 단종이 되었다. 최근 파카 51 복각판이 나와서 관심이 간다. 불행히도 나에게는 펠리칸 m800이 없다. 만년필 좋아하는 사람인데, 3대 만년필 맛은 봐야 하는데... 각설하고!
파카 51 만년필의 외관은 뭐 특별할 것 없는 수수한 차림이다. 파카를 상징하는 화살 클립만이 날카롭고, 나머지는 둥글둥글하다. 파카 51이라는 이름은 파카의 설립 51주년 때 출시되어서 붙여졌다. 1888년에 파카가 설립되었으니 1939년에 첫 출시된다. 그리고 70년대에 단종되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만년필이었다. 무려 8억 자루 이상 팔렸다. 아마도 이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파카 51은 단종되었지만,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만년필이다.
파카 51이 이렇게 많이 팔린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출시 당시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도 한몫했고, 세계 최초로 만년필 촉과 피드 부분을 펜 몸통이 감싸고 있는 후디드 닙(Hooded Nib)을 장착한 것도 한 몫했다. 캡(뚜껑)을 닫지 않아도 쉽게 잉크가 마르지 않도록 고안한 것이다. 또한 만년필을 여닫는 방식을 푸시 캡-바로 꽂았다 뺐다 할 수 있는-으로 하여 빠른 필기 준비가 가능하게 했다. 이번에 출시된 복각판은 스크루방식을 취하고 있어 솔직히 개인적으로 별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파카 51이 정확히 몇 년도 출시되었는지 모르지만 -보수적으로 잡아 70년대 제품이라고 해도- 약 50년 이상이 된 만년필인데 아직도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고 있으니 내구성 하나만큼은 정말 탁월하다.
캡의 끝에는 주얼리를 박아 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디자인하여 약간 고급스러움을 더 했다. 이번 복각판에서는 캡탑의 주얼리 부분은 살리지 않았다.
잉크를 주입하는 방식은 에어로매틱(aerometic) 방식으로 되어 있다.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되지만, 잉크를 주입하고 보관하는 고무 부분(sac)이 삭을 것 같아 걱정이다. 잉크를 주입하는 부분에는 파카 51이라는 각인과 함께, 어떻게 잉크를 주입하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파카 51에는 4번 눌러서 주입하라고 되어 있다.
오래간만에 잉크를 주입했다. 다행히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써진다. 파카 51은 실용성을 바탕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존재감 가득한 만년필이다. 이번에 새롭게 복각된 파카 51을 내 손을 넣을지 말지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아마 호기심 때문이라도 구하게 될 것 같은-, 복각된다는 자체가 그만큼의 존재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존재함이 감사한 만년필이 바로 파카 5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