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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Apr 05. 2021

타락한 저항(이라영, 2019)

고립과 참여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실행하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확신에  어조로 주장을 펼친다. 나는 사실 확인을 시도한다. 그는  보면 안단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반론을 시도한다. 그는  그리 진지하냐고 핀잔을 준다.  갑자기 진지충이 된다.


엄숙함, 신중함, 진지함은 교육의 현장에서도  붙이기가 어렵다. 가끔씩 강의 요청을  오면서 '재밌게'  주시면 된다는 주문을 받을 때가 있다. '에이 설마!' 하겠지만 실제 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오늘 강의 재미있었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성취감이 아니라 현타감이 몰려온다.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독설, 발가벗기는 조롱,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유머, 가슴 뛰게 만드는 선동과 과잉 감정 주입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성에 대한 호소는 사라지고 감정에 대한 호소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깊게 아는 것보다는 넓고 얕게 아는 척하길 권한다. 생각도 속도전에 휘말려 무르익을 시간이 없다.


단죄하고 단정하고, 진영을 나누고, 지나치게 선명하고,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나의 위치를 세워주고, '빠'와 '충'이 넘쳐나는 세상이 불편했다면 예술사회학자인 이라영 님이 쓴 '타락한 저항'(이라영, 2019, 교유서가)를 펼쳐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

저자는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 반지성주의를 화두로 글을  나간다. 애써 모르려고 하고, 모르지만 규정하려 하는 우리 사회의 아픈 이야기를  내려간다. 반지성주의가 만들어 간 타락한 저항에 대한 성찰이다.

'진지함은 속 좁음, 과감하지 못함, 이해력 부족, 유머 없음, 사회성 부족, 옹졸함, 찌질함, 과격한 도덕주의자의 성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저자의 글은 매우 현실적이다. 지성의 복원과 상상력의 확장을 통해 진지함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평은 부실해지고, 여론 재판이 활발해진' 세상은 다수의 공격력과 속도전에 유리하다. 자연스럽게 소수자와 약자는 제대로  방어 한번 하지 못하고 심판대에 서고 만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좋다. 진지함의 회복, 지성의 복원은 자연스럽게 윤리적인 고민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글은 반지성주의가 승리의 개가를 울리고 있는  사회의 해법처럼 읽혔다.


 책을 읽고 이라영 작가에게 반했다. 현상과 본질, 깊이와 넓이, 진지와 유머, 참여와 고립의 변주가 돋보였다. 다행히 나는 작가를 만났고, 내가 일하는 곳에서 진행되는 콘퍼런스 연사로도 초대를 했었다. 전자책으로 읽다 보니 저자의 사인을 책에 받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애써 모르려고 하는 반지성주의의 함정에 그대는 빠져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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