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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Apr 07. 2021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테드코헨외, 2013)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야구 선수를 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야구  하나는 일품이었다. 왼손잡이라는 이점이 있어서, 1루수와 투수를 번갈아 했고 타순은 2 혹은 9번을 맡았다. 나의 우상은 박노준 선수였다.  눌러쓴 모자와 투타를 겸비한 그는  멋졌다.  시절 사진을 겨우   가지고 있다.

야구는 매력적이었다. 공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공 하나하나에 걸린 수싸움이 짜릿했다. 몸싸움보다는 머리싸움이 바로 매력 포인트였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알면 알 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특이한 스포츠였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철학책이 하나 있다.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테드 코헨 외, 2013, 미다스북스)는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읽히지도 않는 책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와 명장면들, 메이저리그 구단들, 그리고 수많은 야구 규칙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그래서 난 참 좋다. 비밀스럽게 초대받은 느낌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첫 장을 딱 넘기는 순간 가슴이 뛸 것이다.

1회 초부터 9회 말까지 야구와 철학을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21명의 야구를 좋아하는 철학자들이 참여해서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야구와 철학이 사실 공통점이 많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를테면 야구를 제대로 즐기려면 제법 시간을 들여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철학도 마찬가지다.'와 같은 공통점을 제시한다.

1회 초 이야기는 홈(home)에서 시작한다. 야구도 홈 플레이트에서 시작된다. 포수는 홈을 지키고, 타자는 홈을 훔쳐야 한다. 타자가 홈을 훔쳐야 점수가 난다. 홈을 훔치기 위해서는 타자는 홈을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으면 점수를 얻을 수 없다. 다시 돌아 올 곳이지만,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정말 멋진 철학적 사유가 아닌가?

야구가 점점 상업화되면서 야구가 지닌 철학적 의미는 사라지고, 부와 명성, 신체적 기량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9회 말 마지막 승부처에서 결승타를 날린다.


'이 문제는 야구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야구를 착취하고 오용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철학도 꼭 그만큼이나 오용되기가 쉽다'(p384)


깊이 있는 철학적 탐구가 아니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야구는 몇 가지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이다. 먼저, 구기종목 중 거의 유일하게 공이 어느 특정한 곳에 들어가야 점수가 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홈에 들어와야 점수가 난다. 인간적이다. 둘째, 희생번트라는 멋진 전략이 있다. 나를 죽여 팀을 살린다. 셋째, 양 팀에게 똑같은 기회가 제공된다. 잘하든 못하든 3번의 기회가 있다. 기량 차이에 따라 죽으라고 공격만 하고 수비만 하는 축구와는 다르다. 넷째, 정말 다양한 모양(?)을 한 선수들이 한 팀을 이룬다. 체형도 배 나온 선수부터 날씬한 선수까지, 느린데 힘이 센 선수부터 빠른데 힘이 약한 선수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각자 다 역할이 있다. 다양성이 핵심이다.


야구 시즌이 되었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시길. 야구를 모르면 아예 읽을 수 없는 책이니 초대장이 있어야 입장 가능한 파티와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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