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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Apr 16. 2021

위험사회(울리히 벡, 2006)

위험은 성공한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이다.

2014년 4월 16일에 나는 제주에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청소년 분야의 리더들을 모시고 '인터넷 리더십'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막 제주에 도착했을 때, 세월호 참사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사하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나의 일기장에는 이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적혔다. 그리고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늘은 그로부터 딱 7년이 되는 날이다. 기억하겠다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점점 희미해져 간다. 일상을 살면서 잊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진상규명이 아직 완벽하게 되지 않았다. 희생자 가족 중 한 명이 내 대학 친구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친구가 삭발을 하고 투사가 되어 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투사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난 1986년에 출간된 '위험사회'(울리히 벡, 2006, 새물결)라는 책이 있다. 풍요한 사회를 만들어 간 근대는 '위험'사회로 귀결되었고, 19세기와 20세기 초반, 공장이나 일에 관련된 위해(danger)와는 달리 새롭게 등장한 위험(risk)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제 위험은 초국가적이며 비계급적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지구환경 변화, 코로나 19 등의 상황만 보아도 울리히 벡의 진단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풍요 위해서 약간의 위험을 정당화해 왔던 근대화의 과정이 만든 비극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대형사고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더욱 빈발할 가능성이 높다. 규모의 경제는    명의 생명을 보살피기가 어렵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도 있듯이, 성장은 위험을  디디고  있다.


울리히 벡은 새로운 근대성을 요청한다. 더욱 성찰적이 되길 요청한다.


위험이 초국가적이며 비계급적인 특징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위험의 노출빈도와 위험의 해결력은 또다시 국가적이고 계급적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에서 위험사회의 이중성을 다시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위험사회에 대한 성찰적 행위이다. 잊지 않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 한 번만, 딱 한 번만 생각해 봐도 답은 있다.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무엇을 위한 성장이며, 어떤 풍요를 원하는지.....


 난 아직까지 7년 전 일기처럼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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