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화살은, 오히려 나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
그토록 찾아 헤맨 ‘안정’을 손에 쥔 채
어느덧 18년이 흘렀다.
그런데 몇 해전,
18층에서 마주한 일상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그 순간은 시간 속에서 조금씩 옅어졌지만,
몸의 감각만큼은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칸막이 사이,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나는 팀장님 앞에 서 있었다.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당신이 책임지는 거라니까?!”
귀가 울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장은 두근거렸고, 손끝이 떨렸다.
모욕을 넘어선, 모멸감이었다.
모두 듣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의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날 이후, 회사 복도를 지나가는 일조차
두려움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말투, 눈빛, 사소한 몸짓 하나에서도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왜 직장 내 작은 괴롭힘들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지치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괴롭힘이라 부르기엔 너무 미세해서,
그래서 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지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작은 파동에도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유리알 같은 상태로 업무 지시를 받다 보니
오히려 더 미련하게,
더 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결과물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더 공허해졌다.
밤 11시, 12시를 넘겨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챙긴 뒤
다음 날 또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지금 생각하면,
집에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들에게 쏟아내지 않을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악순환은 이어졌다.
그 시절의 힘듦은
당시엔 나를 향한 화살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화살이 오히려 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팀장님도 선임이 된 나에게
그에 맞는 꼼꼼함과 완성도를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아이 셋의 일상이 있었고,
모든 것을 해내려면
회사와 '적당히'와 타협하며 살아야 했다.
마침 둘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보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물러남’은 도망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시간이었다.
지쳐 있던 나는 다시 살아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일까?’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그 질문들은
작은 불씨처럼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하나씩, 무엇이든 해 보기 시작했다.
북클럽에 가입해 매일 책을 읽고
인증을 남겼다.
벽돌책에도 도전하며 작은 성취를 쌓았다.
인스타그램 수업을 듣고 계정을 만들었다.
‘좋아요’ 하나에도 흔들리던 자존감이
조금씩 다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릴스 제작 수업에 등록했다가
완주하지 못하기도 하고,
돈을 벌 방법을 찾겠다며
유튜브 강의를 듣기도 했다.
책을 출판한 작가들을 만나며
내 안에 오래 묻혀 있던 열망들이 깨어났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참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흔을 앞두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찾기 위해 쉼 없이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리치료를 전공한 대학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어떠니? 나 좀 달라진 것 같지?”
필라테스 강사로 서 있는
친구의 단단한 뒷모습이
나를 이상할 만큼 크게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를 마친 둘째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 등록을 하러 갔다.
스튜디오 선생님은 설명을 해주시려 했지만
나는 그저 등록하기에 바빴다.
그 순간, 설렜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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