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
아이들은 태어나서 4살이 될 때까지 줄 곧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밥을 먹고
문 앞에서 서서 출근하는 아빠에게 인사를 하면서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외쳤다.
그리고 난 후 우리들만의 '해피 스쿨'이 시작됐다.
엄마랑 노래도 하고 성경도 암송하고 동화책도 읽고 여러 가지 놀이도 하고.
그러다 첫째 아이가 만 4세가 되어 첫 프리스쿨에 갈 나이가 되었고
여러 학교를 알아보고 한 곳을 정해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5월, 3년 만에 친정 가족을 보기 위해 한국으로 출국했다.
한국에서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
8월에 아이가 입학을 해야 하기에 7월에 돌아와야 했다.
별일 있게냐는 생각으로 돌아오기 일주일 전에 했던 건강검진이었는데
갑상선 암이 발견됐다.
그 어느 암보다 전이가 더디고 생존율이 높다고 하지만
마음에 찾아오는 두려움은 결코 작지 않았다.
남편이 급히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수술과 회복의 과정을 함께 해주었고
남편이 먼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와 아이들은 몇 개월
더 한국에 머물다 10월에 돌아왔다.
학교가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기에 결국 입학 허가를 받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다른 학교를 급히 찾아서 아이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첫째는 학교를 다니게 됐지만 둘째는 나이가 안 돼서 여전히 나와 함께였다.
암의 조기발견으로 수술은 잘됐지만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이미 당뇨와 고혈압이 있던 터인데 거기다 수술까지 해서
마음껏 먹지도 못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서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해 온 후로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었다.
우울하고 슬펐지만 큰 병이나 죽을 암이 아니란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내가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했다.
나른한 오후, 창살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너무나 따스하게
느껴지던 날 여전히 소파에 힘없이 누워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시한부 선고가 내려져서 한 달만 살 수 있다고 했다면
나는 뭘 했을까? 뭘 하고 싶었을까?"
예전엔 "지구가 멸망해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구가 멸망하는데 지금 사과나무를 심을 때야? 뭔가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지 먹지도 못할 사과나무는 왜 심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을 진진하게 접하고 돌아왔던 터라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 나에게 한 달의 시간만 주어졌다면
나는 일주일 정도는 아이 학교도 보내지 않고 남편 회사도 쉬고
정말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서 온전히 우리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올 거다.
마음껏 먹고 놀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이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게 해 줄 거다.
엄마를 떠올리면 그저 미소가 지어지고 웃음이 나오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 거다.
그리고 나머지 3주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범한 일상을 보낼 거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삶이 별 일없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그런 평범한 일상.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 닦고 밥 먹고 기도 후
아이들은 학교 가고 남편은 출근하고 오후가 돼서 다시 집으로 모여
저녁을 먹고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누고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다시 씻고 잠을 자고....
내가 먼저 떠나고 나면 남겨진 남편은 슬프겠지만 어떻게든 잘 견디고
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이 모든 시간을
함께했던 아이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얼마나 클까?
상상만 해도 그 작고 여린 아이들의 눈물과
마음의 깊은 슬픔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이런 아이들에게 이제 내가 곧 죽는다고 더는 볼 수 없다고
한 달 내내 아이들을 끼고 있다 불현듯 떠나가버릴 수 없다.
24시간 내내 붙어 있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내 욕심만 차릴 순 없다.
만약 그런다면 엄마가 떠나고 나면 아이들의 일상은 무너져버릴 것이다.
엄마를 잃은 마음도 큰데 일상까지 무너져 버리면
아이들의 상실감이 더없이 커져서 몸도 마음도 잘 자라지 못하고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하지만 엄마가 비록 아플지라도 하루하루를 평범히 보낸다면
어느 날 엄마가 없더라도 아이들은 잘 이겨낼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엄마의 자리가 아주 크게 느껴지고 많이 슬프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고
그러다 보면 엄마를 잃은 슬픔은 희미해질 것이고
사랑받은 추억으로 오늘을 살면서 회복하고 성장해 갈 것이다.
때문에 한 달의 시간이 주어진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사랑받았다 느끼는 마음과
감사함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는 평범한 하루일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속 깊이 오래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보낸 슬픔에 빠져
나만을 추억하면서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헤맨나면 너무나 슬플 것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일어나 그들에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살아있을 때 아이들에 알려주고
가르쳐 줘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얘들아! 혹시 엄마가 죽는다면 마음이 많이 슬프고 아프겠지만
엄마는 너희들이 너무 오래 슬픔 속에 갇혀있지 않았으면 해.
엄마에게 사랑받았던 우리들의 행복한 추억을 마음에 품고
웃으며 오늘 너에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렴.
그것이 엄마가 너희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