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꼭 인구를 따라가는 건 아니다
부동산 비관론에는 ‘인구 절벽’이 빠지지 않는다. 부동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인구이기 때문이다. 집 사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인구절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인구가 곧 수요를 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두려움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 생산가능활동인구[1] 비중은 2014년에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통계청의 전망에 따르면 15-64세 절대인구도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구간에 진입한다. 이러한 변화가 소위 말하는 인구절벽이다. 한국이 일본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바로 이 점에 있다.
[1] ‘15세부터 64세’를 생산가능활동인구로 분류하며 노동력 측면에서 한 국가가 어느 정도 성장 동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로 사용한다. 성장을 이루는 노동·자본·기술(생산성) 중 노동이 단기간에 변하기 가장 어려운 요인임을 감안하면, 성장에서 근간을 이루는 부분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경제활동인구 peak-out 시점과 자산버블 붕괴 시점이 거의 정확하게 일치했던 일본의 경험 역시 인구 요인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꼭 부동산이 인구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노령화 저성장에 들어섰던 것이 유럽
유럽의 부동산 가격은 일본과 달랐다
우리나라도 노령화와 함께 부동산 가격 역시 하락 일로를 걷게 될까?
그렇지 않다. 인구는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노령화와 부동산 가격 상승이 동시에 나타난 사례들도 충분히 있다. 부동산 가격이 꼭 인구를 따라가는 것은아니다.
일본과 대비되는 사례는 유럽에서 발견된다.
일본은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인구 추이를 그렸다.
특히 이탈리아와 일본의 생산가능활동인구 비중 추이는 매우 유사하다. 일본의 노령화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긴 했지만 정점을 통과한 시기는 이탈리아가 더 빨랐다.
그렇다면 이탈리아를 포함한 다른 유럽 국가의 부동산 가격도 하락세를 걸었을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1990년 이후 가파르게 하락한 데 반해 이탈리아의 부동산 가격은 1990년대에 주춤한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오히려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는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갔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영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 역시 생산가능활동인구 비중, 즉 집을 살만한 연령대의 비중 감소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생산가능활동인구가 정점을 지나는 당시에는 일정 부분 영향을 받지만 이후에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꾸준히 줄더라도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패턴을 보인 것이다. 인구는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절대적으로좌우하는 요인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80년대 중반 영국, 1990년대 초반 이탈리아 부동산 가격은 생산가능활동인구 비중이 정점을 통과하며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조정기간이 길지 않았으며 폭 또한 조정이라기보다는 횡보에 가까웠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미 오래 전에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받는 유럽 부동산의 상승세가 생각보다 가파르게 오랫동안 지속된 것이다.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노령화, 저성장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나타난 유럽 부동산 가격 상승은, 과연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하는 대목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가계의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럽에 비해 훨씬 높다는 점, 만만치 않은 대외 경기 등은 유럽과 한국이 분명 차이를 보인다. 생산가능활동인구가 정점을 통과한 이후에도 유럽과 같이 한국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는 핑크빛 전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멀리 유럽의 데이터는 인구가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절대 요인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이 유럽처럼 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과연 일본처럼 될 거다라는 보장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