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이를 키우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주기도문'처럼, '반야심경'처럼

by 솔담

나는 자존감이 낮다.

내면의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다른 사람들 삶에 기웃거리며 공감을 누른다.

얼굴은 늘~스마일.


'어린이집 교사'라는 직업을 버린 10개월의 시간 동안 많이 두려웠다. 낮에 있었던 일이 꿈에 나타나고 자면서도 일을 할 때도 있다. 그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린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병이다.


어린이집 교사로서는 어땠을까? 아이를 키워봤으니 당연히 잘할 거라 생각했다. 내 아이와 지내는 것처럼 그렇게 뒹굴고 놀고 이야기했다. 주말에도 어린이집 가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못한 건 아닌 거 같다.(아이들하고 지냈던 사진을 보면 내가 더 좋아한다.)

내 아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 시작한 일이 이제 내 아이만 자랐다.


16살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어린아이처럼 대해서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는 말한다. 엄마 주변이 이상한 거지( 하루 서너 시간 자고 공부하는 고1, 서울대 다니는 학생, 4학년 때 배우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일본어가 계기가 돼서 일본 유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고2, 취업하려면 간호학과 가는 게 낫다고 미래를 보고 과를 선택한 대학생 등이 내 주변에 있다.) 자기는 평범하단다. 자기 주변에 있는 친구들 모두 그렇게 지낸다고 한다.


남편보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 여자한테 아이를 맡길 수 없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도 과연 내가 아이의 사춘기를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었다. 그래서 아이 아빠가 정기적으로 아이를 만나 내가 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건 바람으로 끝이 났고 10년이 흐른 지금 아이는 공부는 중간 정도 하고 사춘기 아이인지 모를 만큼 편안히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소리 지르고 때리면서 나를 키웠다면 엄청 반항했을 거라고.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1주는 학교에 가고, 2주는 온라인 수업을 듣는데, 출석체크만 하고 수업은 1도 듣지 않는다. 2주 전에 가방 가득 챙겨 온 교과서는 그대로 있다가 바깥구경 한번 못하고 다시 학교로 간다. 그럴 거면 무겁게 교과서를 챙겨 오지 말라고 해도 굳이 꼭 챙겨 오는 아이. 지금껏 아이 성적으로 잘했다 잘못했다를 한 번도 말하지 않은 나였지만 이번에는 입 밖으로 자꾸 튀어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고 있다.


써먹지도 않을 수학은 왜 풀어야 하며, 2020년의 역사는 왜 알아야 하냐며 8000년대 태어난 아이는 8000년 역사를 배워야 하니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역사교과서 5번만 읽어보면 어떨까?(경험상 수학이나 영어는 5번 읽는다고 해서 단기간에 성적이 오를 수 없으니) 조심히 제안을 했지만 유튜브 보면 다 나온다고 한다. 눈으로 보는 거랑 글로 읽는 거랑 뇌가 반응하는 게 틀리다고 했더니 유튜브에도 자막이 나오니 상관없단다. 그러면서 한술 더 떠서 자면서 뇌는 장기기억으로 갈지 단기 기억으로 갈지 분류를 하는데 잠자기 전에 본 게 먼저 장기기억으로 가니까 시험 잘 보려면 자기 전에 잠깐 책을 보면 된다는 나름 근거 있는 가설을 내세운다. 그렇다고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건 절대 아니다. 말만 그렇게 하는 거다.


1년 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주변에 보면 남자아이들은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없다고 하면서 말썽 안 부리면 감사하게 생각하란다. 노노같이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던 애들이 자라서 성공할지 누가 아냐고 말하는 친구에게 "너 노노 하고 나 몰래 통화하니? 어쩜 노노가 하는 말을 너도 똑같이 하니?" 했더니 깔깔 웃는다. 노노랑 캠핑도 가고 놀러 다니라고 하는 친구 말에 캠핑? 하고 놀랐다. 나는 내가 주도적으로 뭘 해본 적이 없어서 아이랑 둘이 캠핑 갈 생각은 못해봤다. 친구 가족이 캠핑 갈 때 껴서 서너 번 가본 게 노노의 캠핑 이력이다. 별을 좋아하는 아이라 강원도 어디에 가면 밤에 별이 쏟아진다고 가자고 하는데 낯선 곳에 차 몰고 갈 생각을 하면 겁이 덜컥 난다.

아이 군대 갈 때 훈련소는 어떻게 가야 하나? 가끔씩 걱정을 하곤 한다.

미래에 있을 일을 당겨서 걱정하는 이것도 병이다.


아이를 혼자 키우겠다고 결정한 나는 어떤 힘이 있었던 걸까? 생활력은 타고났으니 일을 하는 건 겁나지 않았다. 아이가 울면 나도 울고, 아이가 아프면 또 울고, 잠든 아이 보고 울고, 입학식 졸업식장에서도 울고, 나는 왜 아빠가 없냐는 말에 울고, 글 쓰는 지금도 옛날 생각이 나서 울고....... 별게 다 눈물이 난다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냥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팠던 아이니까 건강하게 자라준 게 너어~무 고맙다. 또래 아이들보다 크고,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로 자라줘서 너어~무 고맙다. 그러고 나니까 슬슬 욕심이 생긴다. 나도 우리 아들 공부 잘한다고 자랑을 하고 싶은 거다. 과학영재, 음악영재라는 소리를 듣고 아이가 혹시 그런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을 하기에 조바심이 난 거다.


게임을 사주고 이틀 뒤 또 게임을 사달라는 아이말에 그만 참았던 게 터지고 말았다.

"너 양심은 있니? 지금 네 나이에 해야 할게 뭔지 알고는 있는 거지? 언젠가는 공부를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엄마도 힘든 거 알아? 엄마 혼자 너를 키웠으니 빨리 네 앞길을 생각해서 성공해야겠다 뭐 이런 생각은 안 들어? 엄마 책은 너를 믿는다는 마음을 온통 담은 거야. 그러면 너도 변화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우리나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 해."

거기까지 했어야 했다.

"나도 우리 아들 공부 잘한다고 자랑하고 싶어!" 내뱉어 버렸다.

다음날 출근하는 내게 "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지?" 하는 말을 듣고 반박하지도 못할 만큼 멍해졌다. 출근해서 청소를 하는 내내 그 말이 맴돌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 시작하기 전에 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깊이 생각하고 쓸 시간이 부족한 엄마의 글이라 또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넹' 한 글자에 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날 퇴근 후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밥 먹고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아이는 수저를 놓자마자 친구들을 만나러 가상의 현실로 들어갔다. 10시, 11시가 지나자 나도 포기하고 누웠다. 안녕! 안녕!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을 다녀온 아이에게 "노노! 잠깐만" 하고 불렀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들린 거야? 그랬다면 엄마가 미안해. 네가 그렇게 들었다면 엄마가 말을 잘못한 거야.(중략) 사랑해 아들."

"저도요" 하며

컴컴한 방 안에서 나를 안아주는 아이가 정말 많이 커 보였다.


사춘기 아이를 이렇게 대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제어할 수 있도록 게임하는 시간과 유튜브 보는 시간을 정해줘야 하는걸까? 오늘따라 마우스와 리모컨을 가방에 넣고 출근했던 우*아 선생님 생각이 난다. 크게 웃었던 그 일을 이제는 내가 따라 하고 싶어 진다. 아, 내게도 이런 일을 의논할 남의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아이에 대해 잘 아는 아이의 아빠를 말하는 거다. 그런 가정이 깨졌으니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남의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내 아이는 내가 믿으니까.
아이는 부모가 믿는 대로 자라니까.
나는 혼자니까 믿음을 두배 세배 많이 줄 거다.

앞으로 이 말을 '주기도문'처럼, '반야심경'처럼 외우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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