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명절에 나는 어디로 가?
아들, 엄마는 어디로 갈까?
싱글맘으로 사는 명절은 내게 휴일 연속 이외의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전에는 어땠을까?
짧은 결혼생활이었지만 시댁에서 보낸 10번쯤의 명절은 염치없었다.
일하는 며느리라고 어머님 혼자 음식을 다 해놓으셨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만 하면 되는 명절 전날.
새벽에 달그락 소리에 일어나면 어머님은 더 자라고 방으로 밀어내셨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설거지는 남자가 하는 거야! 00야, 우리는 쇼핑하러 가자'하며 내손을 이끌던 큰언니.(큰 시누이)
난 큰언니와 어머님 사이에서 양쪽에 팔짱을 끼고 다니며 쇼핑을 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들고 시댁으로 돌아와 누워서 뒹굴며 어머님과 이야기를 하다 스르르 낮잠을 자기도 했다. 명절 음식과 김치와 밑반찬 등을 싣고 곧장 친정으로 갔다. 시댁에서 싸준 음식을 풀어 친정식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그렇게 명절을 마무리했다.
명절이라고 특별할 게 없던 친정에 도착하면 시장이나 대형마트로 가서 내 손으로 장을 봐야 할 때도 있었다. 엄마에게 명절은 그냥 다른 날과 같은 날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엄마는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마음이 아팠던 엄마는 사돈이 싸준 음식을 그냥 풀어놓으면 맛있게 드셨다.
그러던 엄마가 시골로 이사 가더니 명절이면 언제 오냐고 물으신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찾아가도 밀쳐내지 않으신다. 어제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부침가루랑 튀김가루를 주문해 달라고 하신다. 친정집 문을 열면 기름 냄새가 확 밀려올 거다. 명절 같겠지? 얼마 만에 맡아보는 냄새 일지.
올해 추석에는 동생도 언니도 오지 않는단다. 친정부모님과 노노와 나 이렇게 넷이 보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둘이 보냈던 그때보다 두배가 늘었으니.
노노가 묻는다.
"엄마! 나 독립해서 혼자 살면 명절에 어디로 가? 엄마는 할머니 집에 갈 거 아냐"
"음, 할머니 집으로 오면 되겠지? 혹시 친할머니네 가고 싶으면 말해. 엄마가 차례 끝날 동안에 밖에서 기다려 줄테니까."
"아냐! 안 가고 싶어."
"이렇게 돼서 그렇지 네가 강 씨 집안 장손이야. 나중엔 네가 제사도 모시고 차례도 모셔야 했는데..,..."
"엄마! 지금 이 상황에 장손이 무슨 의미가 있어? 난 엄마한테만 잘하면 돼지."
"엄마 죽으면 화장해서 나무 밑에 묻어줘. 그리고 다른 날은 몰라도 그날은 엄마 생각해줘."
" 음, 알았어."
이런 대화를 자주 해서인지 노노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한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지만 바다에 뿌리면 불법이라고 해서 아들을 법을 어기는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기에 어느 날부터인가 수목장으로 바꾸었다.
"차례는 안 지낼 거지? 명절에 엄마는 어디로 갈까?"(엄마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라는 뜻이었다.)
아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네가 차례 안지내면 엄마는 맛있는 음식 차려놓은 친구네 가서 먹고 올게" 동시에 노노와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아직은 부모와 헤어진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 나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엄마 연명 치료하면 안 돼! 엄마가 어디 아픈지 얼마나 남았는지 꼭 이야기해줘야 해. 엄마에게도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해."
"알아. 엄마가 이야기했잖아. 그 약속은 꼭 지킬게."
독감 예방접종을 하러 간 병원 대기실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빨간색 표지로 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던 10년 전쯤 그때 나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아는 *정언니가 그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 책은 책꽂이에 꽂힌 채로 그냥 있었다. 읽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읽으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던 엄마라는 단어가 꽉 잡고 있었다. 집에 놀러 온 6학년 조카는 서슴없이 그 책을 꺼내더니 읽기 시작했고, 나는 선심 쓰듯 조카에게 그 책을 가져도 좋다고 했다.
10년 뒤 다시 만난 빨간색의 표지.
그리고 읽어 내려갔다. 30분쯤 읽고 내 이름이 불려서 제자리에 꽂아 두었다.
그렇게 엄마에 대한 꽉 막힌 벽이 허물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밖에 나오니 비가 그쳤다.
긴 우산으로 바닥을 콕콕 찍으며 걸었다.
독립한 아이가 찾아오는 명절에 나는 무얼 만들어 놓고 기다려야 할까?
내 아이에게는 '엄마'만 생각하면 꽉 막히는 고구마 같은 존재는 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