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선택권이 주어진 가족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나부터 바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자.

by 솔담

부모님도 형제자매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받아들였다. '가족' 참 끈끈한 말이다.


어릴 적 동생은 엄청난 개구쟁이였다. 노량진 성당 근처에 살았는데 동네 어른이 동생을 야단치면 난 달려가서 '내 동생한테 왜 그러냐'라고 했다. 동생을 때린 아이 집에 찾아가 부모님께 다음부터는 때리지 말라고 해달라는 부탁도 했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 나는 왼쪽 마루를 향해 소리치고 있다. 작고 약했던 나는 유난히 동생 일에는 어른들을 막아서고 소리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동생은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를 한다. 목소리가 잠기면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어제는 독감 예방접종을 꼭 하라는 당부를 했다. 이번 추석 때 이사를 해서 엄마 집에는 못 간다며 누나는 갈 거냐고 묻는다.


안 간다는 생각은 못해봤다. 꾸역꾸역 아이를 데리고 엄마 집에 갔는데, 쫓겨 나왔던 10여 년 전 그때를 제외하고 다시 엄마와 연락을 한 뒤로는 빠지지 않고 갔다.


아이 아빠가 집을 나간 해의 첫 추석에는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갔다.


김치를 먹더라도 나누어 먹을 테니 아이만 잘 키워달라는 아버님의 말 때문도 아니고, '너 걔랑 헤어져. 내 동생이지만 미친놈이야!'라고 말하는 큰언니(큰 시누이)때문도 아니었다. 친정부모님보다 더 의지를 했고, 옆에 누워 뒹굴며 이야기를 했던 시어머님 때문도 아니었다. 내 아이에게 아빠는 나갔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명절이면 찾아갈 수 있는 곳, 그곳이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추석을 시댁 식구들과 보냈다.


이제는 우리 집에 가지 말라는 전화가 그 사람으로부터 왔다. 그래도 명절이면 꼭 찾아가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다짐으로 끝났다. 그리고 우리 모자는 명절 당일날 조조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갔다. 아이는 영화를 보고 나는 아이를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이 아이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아야 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배우자라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배우자는 내 선택이었는데 실패했다.

기준 , 기준을 세워보자.


다시 배우자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게도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소개해주는 사람 말고 내 기준에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1. 말은 부드럽게 할 것.

2. 계획 없이 여행을 가더라도 여행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혼 후 친구 소개로 만났던 사람 중에 내가 낼 수 있는 돈이 얼마쯤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난 서운하다 말했고 오히려 그 사람은 화를 냈다.)

3. 그 여행 장소는 바닷가 근처고, 해변을 따라 맨발로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4. 낮게 피어있는 들꽃을 바라보느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좋겠다.

5. 그러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아님 말고'쿨하게 돌아설 수 있는 나부터 만들어야겠다.


5번이 만들어지는 날~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 마음을 꽁꽁 숨기고 그 사람에게 맞춰나가는 인생도 안녕! 이기를 바란다.


나부터 달라져야겠다.

내가 변해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혼자 있는 지금이 외롭지 않다.

문제는 나다!!

Capture%2B_2020-09-13-22-48-12.png 드라마 「디어마이 프렌즈」 마지막 장면

꼭 둘이 아니어도 함께 석양을 바라 볼 그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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