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이국 땅에 자리 잡은 이민 1세대들. 어릴 적 보았던 영화 [뿌리]를 연상 캐 했다. 가로수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그 말.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하지 않은 시절 혹하기 좋은 그 말. 사진 한 장을 보고 하와이로 결혼을 하기 위해 떠난 사람들.
양반을 돈 주고 산 부잣집 딸 홍주는 내 친구 남*이와 닮았다. 학창 시절 남*이가 들려주는 연애사는 사춘기 소녀들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다. 밥 수저로 푹푹 퍼서 타주는 커피는 맥*믹스 커피보다 황금비율이었고, 텃밭에서 뜯어다 뚝딱뚝딱 음식을 해주는 큰 언니 같은 존재였다.
맞는 말을 듣는 사람 가슴을 콕콕 찌르다 못해 반박하지 못하게 하는 말 기술을 가졌고 표정 또한 대범하다. 돌려서 말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일이라면 제일 먼저 나서서 후다닥 해결사 노릇을 한다. '건들면 알지? 얘는 내 친구야.' 큰 언니가 아니라 큰 형님이다.
쉰이 넘은 지금도 하루 대 여섯 시간 운동을 하고 피부관리받는 중에도 식구들에게 집밥을 챙겨주는 주부 9단.
19살에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사람과 결혼 한 연*는 이혼하고 비행기 값만 마련해 아이 둘과 사촌 언니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투잡에 쓰리잡까지 하면서 불법체류자의 몸으로 잘 버텨서 지금은 시민권까지 획득했다. LA로 여행을 간 동창이 국밥집에서 서빙하는 연*를 봤다고 나에게 까지 돌아 돌아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힘들 때면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한국에 친구는 너 하나밖에 없다고 소주 한 병 마셨다며 유쾌하게 웃던 연*. 선생님들 몰래 립스틱 바르고 머리에 힘도 주고 멋을 알던 연*의 결혼생활은 친구들이 말하는 삶과 달랐다. 해마다 큰돈 들여서 하는 굿은 남편의 사업번창과 외도를 막아보겠다는 양면의 염원이었다. 이사 간 집에 낯선 사람이 보인다고 말하던 연*는 무당의 손녀였던 송화를 닮았다. 웃음소리가 듣는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친구 연*. 그 누가 뭐라 해도 괜찮아. 넌 지금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1990년 초에 갑자기 미국에 산다는 엄마 친구가 찾아왔다. 엄마와 한 직장을 다니던 분이었는데 미국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한 달간 머물며 엄마의 힘든 삶을 듣고 겪어보더니 나를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다. 밤마다 쫓겨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입양하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으니 취업 비자를 받아서 미국으로 오면 이모(엄마 친구를 그렇게 불렀다.)와 함께 지내면 된다고 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이모는 간호사가 취업이 잘된다고 하니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권했다. 막상 현실이 된다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미국에만 가면 신세계가 펼쳐질 것 같던 상상은 상상에서 그쳤다. 사진 한 장 보고 하와이로 이민을 간 1900년대의 여성들보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으면서도 미국행을 선택하지 않을 것을 보면 그래도 견딜만했던 걸까? 아니, 무기력했을게다.
내 꿈을 반대하는 게 나를 위해서라고? 부모는 모든 걸 자식을 위해서라고 변명할 수 있으니 참 좋겠다. 347p
꿈은 자다가 꾸는 게 꿈이고 미래를 뜻하는 무엇인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니 아이에게 자꾸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지금 하루가 행복하다는 아이가 미래에도 행복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손에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행복은 무언가가 되고 이루어 낸 사람에게만 돌아갈 것 같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행복을 줄 것 같은 부모의 마음과 다르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겪었음에도 가지고 있는 돈의 양과 행복은 비례할 것만 같다.
참 모순적인 엄마다 나는.
고등학생이 돼서도 공부보다 춤에 빠져있자 엄마는 나와 상의도 없이 형제클럽 선생님에게 나를 공연에 참가시키지 말라고 했다. 부모가 자신의 뜻과 다른 길로 가는 자식을 막고 싶을 때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었다. 366p
나의 뜻과 다르더라도 아이가 빠져 있는 무엇인가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미래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생각을 하는 아들을 둔 엄마) 그게 무엇이든 난 아이가 하고 싶은걸 하라고 격려해 줄 것 같다.
엄마가 자신의 생애를 바쳤다고 해서 자식의 인생까지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다. 367p
너네들 키우느라 엄마가 이렇게 살았다고, 너네를 위해 이렇게 살았는데 혼자 큰 것 같이 말한다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냐고 술 한잔 마시지 않고 맨 정신으로 쏟아내는 엄마의 그 말을 담기에 너무나 벅찼다. 내 아이의 시선에서 엄마가 날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열심히 또 열심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겠다. 또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은 엄마와의 날들을 현명하게 풀어나가야겠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이들은 몸뿐만 아이라 삶도 베이고 상처를 남겼다. 고단한 삶을 지켜내는 단단함은 역시 자녀였다.
부모 삶의 자양분으로 자라다 이제는 자녀로부터 힘을 얻는 그런 나.
하지만 내 아이에게만큼은 양 어깨에 '부모'의 삶까지 얹고 살게 하고 싶지 않은 건 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