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단련이라 읽고 생각 단련이라 쓴다.
복희가 궁금하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보았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다. 글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기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다.
이슬아는 하루에 오백 원, 한 달에 만원에 매일 글을 썼다.
오늘은 어떤 글일까? 하는 기. 다. 림.
나 대신 사이다 같은 핵발언을 했을까? 하는 기. 대. 감.
복희와 슬아의 19금에 동참할 설. 레. 임.
정말 뉴발(새로운 발상)이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것을 해 낸 이슬아이기에 지금의 영광이 돌아간 것 같다.
[심신단련]을 읽으면서 이슬아의 글 파헤치기를 해보았다.
첫째, 단어 선택이 특이하다.
월세 벌기, 시간을 쓰다, 그리하여 나의 일기에는 자주 여러 여중생들의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표현이 특이했다.
존나, 섹스, 삽입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내뱉기 어려운(그런 말 하면 내 얼굴부터 빨개지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특히 엄마와 밤나무 꽃 냄새가 남자의 정액 냄새 같다고 말하는 것을 읽으며 슬아의 엄마 복희가 궁금했다.
그래서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출판사 제공글을 확대해 보았다.
역시 복희는 달랐다.(궁금하시면 여러분도 찾아서 확대해보시길...)
둘째, 반대되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서로 지탱해주는 느낌을 주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만들게끔 한다. 예를 들자면,
‘중요한 일에 얼마든지 능숙하며 중요하지 않은 일엔 맘 편히 미숙하다.’
‘달변이 쓰는 글 말고 늘 변이 쓰는 글에 더 유심해지게 되었다.’
‘고맙고도 두려운 사람들’
빨리 감탄하거나 빨리 실망했다.’
‘기대와 염려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몸도 짐도 무거워진다.’
셋째, 20대이지만 ‘삶’에 대해 깊은 경험의 글을 썼다.
‘가족들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만 나누며 밥을 먹었다. 정말로 꼭 하고 싶은 말을 누구라도 시작한다면 이 가족은 파탄이 날 것이다. 76p
넷째, 부모님에 대해서도 제3의 눈으로 본다.
‘그는 소통과 연결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고독과 고립의 시간을 꼭 확보하는 외톨이 기도 하다. 사실 두 가지는 충돌하지 않는다. 고립과 연결은 서로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내 부모에 대해서도 주관적인 생각을 쓰고 3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글을 썼다. 나도 부모도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본다.
20대는 내 부모는 몰라도 자신들은 아는 글을 보고 열광하는 것 같고, 복희와 슬아와의 대화를 보면서 내 부모와는 나누지 못하는 공감대가 부러울 테다.
부모는 아, 나도 그래 볼 걸, 그래 그땐 그랬지?하는 내 안의 20대를 봉인 해제 시킨다.
또한 복희와 웅이의 등장으로 '가족 간의 소통이 잘된 예'를 보여준다.
복희가 아닌 내 입장에서 슬아를 바라본다면 나는 어떠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역시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피임 잘해야 해’ ‘서로 동의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이나 섹스는 하지 말아야 해’ 정도였다.
이슬아는 삶의 기준이 정학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 사람 같다.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건 자신만의 유형을 만들어가는 시간이니 나도 많은 글을 쓰고 읽어야겠다. 그리고 복희와 웅이처럼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심신단련의 한 문장은?
착한 애 콤플렉스:너무 모범적이려고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