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내가 부럽지?

잃어버린 내 본전 찾습니다.

by 솔담

한 달 전 친구의 시아버님께서 수술을 하셨다.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시던 두 분이지만 홀로 집에 계시던 시어머님께서는 허전하다며 저녁도 거르셨다고 한다. 수술도 잘 되었고 간병인의 보살핌으로 3일 만에 퇴원을 하셨는데 영 입맛이 없다고 하신단다.

수술하기 전 검사비와 병원비에 보태라고 드린 돈이 150만 원. 입맛 없으시다니 두 분께 홍삼으로 만든 땡관장을 사드리는데 80만 원이 들었단다. 수술이 잘 되었는지 확인차 병원을 가는데 내일 쉬는 사위를 마다하고 꼭 아들(친구의 남편)하고 가고 싶다고 하신단다. 화로 가득찬 친구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만히 듣던 나는 '이럴 땐 내가 부럽지?'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어라? 반응이 왜 이래?

나를 한참을 노려보던 친구가 입을 뗐다.

'너네 친정은 더하잖아!'

그런가? 쩝.


친정 갈 때마다 트렁크 가득 분리수거 싣고 와서 버려야 하고, 추석이면 송편, 설날이면 가래떡을 해서 가야 한다. 치즈 먹고 싶다, 두유가 떨어졌다~ 말하기가 무섭게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드린다.

'저번에 주문한 두유는 맛없더라. 3육 두유로 주문해. 고소한 걸로' 맞춤형 주문도 가능하다.

명절이면 바뀌지 않는 엄마의 레퍼토리.

'이번 명절에도 아무것도 안 할 거다'

'엄마, 그럼 나도 안 갈게. 노노가 할머니네라고 가면 뭐 먹을 게 있어야지 명절이나 평상시나 똑같이 김치만 먹을 거면 뭐하러 가? 이참에 나도 푹 쉴래.'

'그럼 우리가 너네 집으로 갈게.'

'엄마, 그건 더 싫어. 힘들게 일하고 엄마, 아빠 드실 명절 음식 나보고 준비하라고? 김치만 먹더라도 그냥 엄마네 갈게.'

엄마가 이겼다.


저녁을 먹고 치우려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 떡 주문 안 했으면 하지 말아라.'

'주문했는데? 내가 떡 안 맞춰 가면 설날 뭐 먹으려고?'

'아니, 그냥 사다 먹으려고 했지.'

'그러니까 어떻게 사다 먹으려고?'

'너보고 올 때 사 오라고 하려 했지.'

'떡 맞추나 사가나 똑같지. 반은 길게 반은 썰어서 달라고 했어'

'그러냐? 잘했다.'

우리 엄마는 같은 말을 해도 참 사람 힘 빠지게 하는 재주가 있다.

잃어버린 내 본전은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나.


더 늦기 전에, 때늦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땅을 치기 전에......
언제 운명의 신이 부모님과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을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부모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주어진 오늘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다.
-고도원의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 드려야 할 45가지] 서문에서-


이번 설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오겠습니다.


오랜만에 붓펜으로 필사를......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엄마와 헤어질 땐 눈물이 난다

낙엽타는 노모의 적막한 얼굴과

젖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기차를 타면

추수 끝냔 가을 들판처럼

비어가는 내 마음

순례자인 어머닠ㆍ

순례자인 딸을 낳은

아프지만 아름다운 세상


늘 함께 살고 싶어도

함께 살 수 없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감싸주며

꿈에서도 하나 되는

미역빛 그리움이여.


-이해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