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이역이 내게 생긴 건 11년 전 8월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혼을 받아들이는데 1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고 법적인'이혼'이 성립된 시기를 말한다.
10년이 지나다 보니 혼자 지내는데 익숙해졌다. 흔히들 말하는 시월드를 갖지 않으니 세상 속편 하다. 사춘기 아들을 뒀지만 원만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으니 내 생활은 잔물결이 흐르고 있다. 간혹 가다가 내게 큰 태풍이 밀려오곤 하는데 친정식구들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그냥 수용해 버리려 한다. 정 견딜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제 대청소를 끝내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너 **가약이라는데 아니? *숙(둘째 큰아버지 딸)이가 거기 산다는데 처음 살 때 4억인가를 대출 없이 샀다더라.'
'아, 거기? 우리 집에서 걸어서 25분쯤 걸려. 가까운데 사네'
'너 P시로 이사 왔다고 했다. **고등학교 앞으로.'-나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 8년째다.
'그럼 이제 다 알겠네. 30년 된 아파트로 이사 왔으니 못 산다는 거 말이야.'
'네가 투자 목적으로 거기 사놨다가 들어왔다고 했는데?'
'엄마, 투자 목적으로 살 거면 신도시 아파트가 넘쳐나는데 여기다 사겠어? 그리고 우리 집 근처에도 비싼데 많은데, 여기 산다고 하면 어렵다는 거 다 알 거야.'
심기 불편함을 엄마는 침묵으로 대신했다.
'엄마, 이제 그만 자랑해. 엄마가 거짓말한다는 거 큰엄마도 *숙이 언니도 다 알게 될 거니까.'
'*경(셋째 큰아버지 딸)이랑 *영( 첫째 큰아버지 딸)이랑 둘이 자주 전화 통화한다더라. 그런데 *영이가 너 이혼했다고 뭐라고 했다더라. 내가 분해서 잠을 못 잤어.'
'엄마, 사촌동생 이혼했다고 욕하는 사람보다 중간에서 말 전하는 큰엄마가 나쁜 거야.'
'내가 요즘에 잠을 못 자는데 그 소리 듣고 어찌나 분하던지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못 잤어.'
'엄마, 엄마 마음에서 딸 이혼한걸 못 받아들이니까 그렇지. 이제는 좀 받아들이면 안 돼?'
'알았다. 끊어라.' 뚜뚜뚜뚜........
나의 절친 엄마와 둘째 큰엄마는 한 아파트에 산다. 길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큰 엄마는 바로 우리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딸의 이혼을 비밀로 하려던 게 들통이 나버린 엄마는 나의 절친 엄마 입이 싸다고 내게 전화를 해서 노발대발하셨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친구한테 이혼했다고 이야기를 했냐면서.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에서 이런 글이 나온다.
자살을 하는 사람은 남아있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난 그걸 읽으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큰딸이 아직도 강남에서 부자로 살고 있고, 작은딸도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는 엄마의 그 말이 두 딸들이 감당해내야 할 삶의 무게임을.
부모님이 살아계신 지금은 이래저래 피해서 다니고 있다. 하지만 두 분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은 우리가 피할 수 없을 텐데 맞닥뜨려야 할 두 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이라도 사서 부자 행세를 하고 남편 행세를 시켜야 하는 걸까? 얼굴에 드리워져있는 삶의 힘듦은 무엇으로 지우고 그 자리에 나타나야 할까?
친정엄마에게 들은 분하다는 그 말이 나를 찌른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딸이 이혼한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가만히 있었다.
왜 아무 말이 없노? 묻는 딸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뭔 말을 할 필요가 있나? 니 결정 함 내리면 안 바꾼다 아이가. 결정하기 전까지 제일 힘든 것도 니고, 그 후에 제일 힘든 것도 닌데, 내가 뭔 말을 하노.
난 내게 생긴 '이혼'이라는 간이역에 서지 않고 지나가고 싶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이혼'이라는 간이역은 내가 지나쳐도 자꾸 생겨난다. 지나가면 앞에 생겨나고 또 지나가면 앞에 생겨나서 내 의지로 지나칠 수 없는 그런 날이 있다. 그 날을 만나면 난 울음을 참느라 힘을 준 목울대가 아프다. 흘린 눈물을 담아낸 눈도 글씨가 흐릿하게 보인다. 친정엄마가 만들어준 그 힘든 여정에서 나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부모가 만들어준 길에 들어서지 못해 쉰이 넘도록 아픈 나.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선택한 걸 엄마는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할게. 엄마는 늘 너의 편이야.'
인생의 수많은 문제는 얼핏 다지선다형으로 보이지만 실은 주관식일 때가 많다.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 22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