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관계 풀로 붙일 수 있을까요?

아뇨, 괜히 찢어진 게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by 솔담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무수히 많은 것들이 함께 딸려 온다.

만남을 특별한 무언가로 만드는 과정에서 찢어지고 갈라지고 피를 토하기도 한다.

작거나 크게 받은 상처들을 안고 관계를 지속하거나 아니면 돌아서거나.


영원할 것 같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아직도 설거지할 때 뜨거운 물에 식초 넣고 헹궈?"

"이젠 그거 안 해. 언제부턴가 그냥 안 하게 됐어."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해야 할 것만 내 인생에 빼곡하게 차 있었다.

숙제 검사를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늘 불안했다. 그 불안은 점점 나를 먹어버렸다.

내 실체는 사라지고 남은 건 보여주기 위한 사람 형상을 한 빈껍데기.



늘어가는 뱃살만큼 늘어가는 나이만큼 늘어가는 나태함.

그래도 괜찮다. 10년만 더 애쓰고 살자.


나는 가진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60세까지만 사무실에서 일을 할 거다. 이제 9년 남았다.

몇 년 전 출근시간에 늦을까 봐(출근하는 학부모님이 편안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7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도착해야 하는 나는 편안하지 않은 종종걸음을 하며 살았다.) 시청을 가로질러 갈 때 만나던 청소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도 60이 넘으면 여기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남들 일할 때 신나게 노는 60대의 나.


희끗한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자전거를 타며 유유히 거리를 배회하거나, (자전거부터 배워둬야겠다.) 큼큼한 냄새가 나는 헌책방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에 함박웃음 짓는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런 하루를 그려본다. 보다 나은 미래가 아니어도 괜찮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믿는 내가 잘못인지 말하는 사람이 잘못인지를 걸러낼 줄 아는 50대를 살아야한다. 그러다 보면 60대는 마음이 세련된 내가 되어있을 거다.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침묵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노년을 그려본다.



늘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해초 샐러드가 눈에 띄었다. 물에 담가 놓았다가 비빔밥을 해먹을 요량으로 비닐을 떼었더니 상한 냄새가 확 몰려왔다. 사람도 그렇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상해버린 그런 사람들이 내뱉은 말은 내 마음이 공허한 날 스멀스멀 올라와 또 나를 갉아먹는다. 상한 음식은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왜 속이 상한 사람들의 마음은 담아두는지 마치 내가 쓰레기통이 돼버린 듯하다. 물건뿐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일 그것 또한 행복한 하루를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 되겠지. 비워야 한다면서도 또 한 가지가 늘어나 버렸다.


큰 물고기를 옆에 두고 부러워말고 나랑 닮은 지리 멸치를 가까이해야겠다. 나도 누군가의 지리 멸치가 되어 작은 눈을 반짝이고 싶다. 깨져버린 관계를 애써 이어 붙이려다 완전히 새가 된 그날이 자꾸 나를 파먹는다.


"나 **아빠가 왜 바람 폈는지 이해되는 거 같아. 너 혼자 스스로 해결 못하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자꾸 물으면 어느 남자가 집에 오고 싶겠니?"


마주 앉아 내뱉는 그 사람의 눈과 마주칠까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나는 지리 멸치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살면서 잘해야 하는 일이 참 많다. 그중에 정말로 잘해야 하는 일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 림태주의 [관계의 물리학] 중에서 -


물을 쏙 빨아들이는 휴지 말고, 또르륵 굴러 떨어뜨리는 기름종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