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건
염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한 독백
30분 전 벗긴 양파가 매운 건지 노안이라 그런 건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노 요코의 책 「사는 게 뭐라고」를 누워서 읽으며 뒹굴었다. 출근하지 않은 토요일 아침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매주 쉴 때는 모르던 감사한 마음이 이런 거구나 싶다. 요즈음 나는 사노 요코의 책 다섯 권을 돌려가며 읽고 또 읽고 있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솔직함이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걸까? 글을 쓰는 것도 나를 포장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글 쓰는 게 조심스러워진다.
출근해서 아침 청소를 하고 나면 목덜미에 땀이 흥건하다. 머리를 질끈 묵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어느 날 삐죽이 튀어나온 흰머리가 영 거슬렸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슬펐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팔이 후달 거리기 시작한다. 저번 주부터 먹기 시작한 박씨네 카스는 잠깐 번쩍 힘을 만들어 준다. 어제 옆자리 팀장은 너무 힘이 들어 토할 것 같다고 했다. 달콤한 믹스 커피 한잔을 끝까지 마시는 시간조차도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뿌리는 파스를 손목과 어깨에 뿌리고서야 겨우 마감을 하고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한다. 내게 나이가 든다는 건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견뎌내는 게 아닌가 싶다.
코로나 예방 백신을 맞고 잘못된 사례를 들으면 맞기 전에 오래전에 써놓은 유서가 잘 보이도록 책상에 놓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없더라도 나의 아이가 혼자서 살아가야 할 힘라도 남겨놓아야 하니까. 옆에 누군가가 있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 더불어 머리까지 무거워진다. 내게 나이가 든다는 건 남아있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을 하나둘씩 정리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먼 미래의 일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일주일 넘는 아침시간을 이불에서 뒹굴며 보내고 싶고, 툭 털고 일어나 바다를 보러 가고 싶고, 책 한 권 끼고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멍 때리고 싶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날. 그런 날을 기다려 본다.
십오 년쯤 뒤 만 날 그날을 위해 참 열심히 지금을 버티고 있다. 그 뒤에는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살아도 좋을 그런 시간이기에 생각만 해도 좋았다. 앞으로 남은 십오 년 안에 나의 부모님은 없었다. 지금처럼 가끔 전화하고 가끔 찾아뵙는 평범함만 생각했다. 두 분은 아프거나 혼자 남으면 절대 요양병원은 가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도 설마설마했는데 엄마와 통화를 하다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가 우리 ** 불쌍해서 너네 아빠보다 일찍 못 죽는다.' 왜? 묻기도 전에 '너네 아빠가 딱딱한 너네 언니한테 가겠니, 며느리한테 가겠니. 너밖에 없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듣기만 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훨씬 젊었을 때부터 자식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던 부모님. 월급날이 되면 엄마는 쌀가게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쌀 한말이 담긴 누런 포대를 안고 집으로 걸어가 희멀건 김치에 갓 지은 밥을 배불리 먹었다.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맛이 아니라 배고픔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지금도 밥을 많이 먹는다. 배가 불러야 안심이 된다. 도시락을 들고 대방역에서 내려 한강 다리를 건너 여의도까지 걸어가야 절약되는 버스요금은 언니가 데려오는 형부 될 사람을 대접할 참치캔 사는데 쓰였다. 부잣집 도련님이 참치캔 넣은 김치찌개 하나에 밥을 한대접이나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최저임금에 만족하며 큰 욕심 없이 사는 지금의 나는 그때부터 만들어졌다. 그런 삶을 만들어 준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까? 자식에게 가벼운 솜을 지어준 걸로 아는 걸까? 자식이 흘린 눈물에 젖어 한껏 무거워진 솜의 무게를 부모님은 왜 모르는 걸까?
나이가 든다는 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인 걸까?
두통약을 먹어도 머리가 욱신거린다.
내 마음은 머리에 있나 보다.
이놈의 편두통은 언제쯤 사라지려는지.
나라도 염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