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게 내려앉은 말들

모녀간의 대화도 평행선을 달린다.

by 솔담

휴가가 시작된 토요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기사님이 침대를 설치하는 동안 나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포장을 했다.

소비자 만족도를 작성하는 동안 기사님은 오미자청을 벌컥 들이켰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샌드위치를 수줍게 건넸다.

"일찍 오시느라 혹시 아침 못 드셨을까 봐요" 하며 열려있는 기사님 가방 안에 쏙 집어넣었다.

그냥 지나쳐도 되는데, 문자 보내주신 기사님의 글에 감동했다.


늦잠 자고 일어난 노노와 아침을 먹으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친정엄마가 들어왔다.

"너 오늘 쉬는 날이냐? 난 네가 1시에 끝나는 줄 알았다." 내가 쉬는데 엄마의 얼굴빛이 안 좋다.

"어, 오늘 12시에 병원 예약해놨어. 연락을 하고 오라니까 또 그냥 왔네?"

"내가 여기 오는데 누구 허락받고 와야 하냐? 내 맘이지."

"다 큰 손자가 있는데 그래도 전화 정도는 하고 와야지."

"손자가 아니라 네가 싫어하는 것 같다."

엄마가 들고 온 가방 안에는 옥수수 10자루, 호박 두 개, 쪽파, 대파, 상추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따끈한 전복죽 세 그릇.

"무거운 거 들고 다니지 말고 전화하면 내가 가지러 간다고 했잖아 엄마."

"이것도 못 들고 다니면 죽어야지."

"내가 이거 먹으면서도 마음이 안 편해 엄마. 제발 무거운 거 들고 다니지 마. 응?"


일주일 전에도 엄마, 아빠가 갑자기 방문하셨다. 두 분이 가져온 걸 풀어놓으니 이건 손으로 들고 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엄마, 뭐 줄 거 있으면 전화를 해. 응?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왔어."

아빠가 싱긋 웃으며 "머슴 있잖아. 머슴."

엄마는 눈을 흘기며 " 매일 삼시세끼 먹으면서 이만큼도 못 들고 다녀?"

옥수수 20자루, 내 주먹만 한 토마토 20개, 오이 고추 50개,호박 2개, 대파, 오미자청과 토마토 원액 주스가 각 2L 병에 들어있었다. 호박잎과 상추까지.

"토마토가 상하려 해서 주스 만들고 또 가져왔다."

"전철역에서 전화하거나 택시를 타고 들어왔어야지. 또 전철역 안에서 이 무거운 거 들고 왔다 갔다 하면 얼마나 힘들어. 지금 코로나가 얼마나 위험한데 버스에 전철에...."

속사포처럼 쏘아대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정리를 했다.

"두 분이 드실 만큼만 심으면 안 돼? 엄마, 욕심부리지 말고 내년에는 조금만 심어 응?"

내가 이 말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엄마는 직접 농사지은걸 뜯어서 버스 타고 시내에 나가 그전에 다녔던 병원에 가서 나눠주고 오신단다.

"의사 하고 간호사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니?"

"나눠 먹는 건 좋은데, 엄마 여긴 시골이니까 다른 집에도 다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심어. 응?"


엄마 앞에서 전복죽을 맛있게 먹었다. 옥수수도 삶았다.

나는 커피 엄마는 오미자청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네가 크면 엄마 손 고쳐준다고 한 거 생각나냐?"

"기억나지. 엄마 우리 그땐 병원 갈 생각을 왜 못했을까?"

주먹으로 때리는 아빠를 손으로 막다가 소지와 약지 사이로 주먹이 들어가 엄마의 새끼손가락이 밖으로 꺾였다. 매일 반복되는 폭력이었기에 그냥 받아들였고 '내가 크면 엄마 손 꼭 고쳐줄게'라며 엄마의 아픈 손을 어루만졌었다.

'여기 상처 보이지? 너 태어나기 전 소주병에 베인 거야. 피가 얼마나 나던지 수건으로 뚤뚤 감았는데 펑펑 젖더라. 그래도 병원을 못 갔어." 벌써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 나, 너네 아빠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왔으면 좋겠어."

서른아홉에 아빠는 경찰을 그만두었다. 엄마의 소원인 남자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와야 한다는 그 말은 통일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엄마, 나 병원 다녀올게 기다리셔. 엄마 좋아하는 간짜장 시켜 먹자."

엄마도 따라 일어선다. 역에 내려 드리는데, 자동차 문조차 힘이 없어 잘 닫지를 못하신다.

그 무거운 걸 들고 오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엄마, 집에 잘 도착했어?"

"저녁 벌써 먹었다. 꿀 할매네 놀러 갈 거다."(양봉을 하셔서 꿀 할매.)

"마스크 꼭 하고 가 엄마."

"나 이제 너네 집 안 갈 거다. 아들도 누나 쉬는데 왜 갔냐고 뭐라고 하고, 딸도 오지 말라 그러고 너도 내 나이 돼봐라 얼마나 서러운지."

다음 말을 이을수가 없다.

더위에 뒤섞인 말들이 허공을 떠돌다 무겁게 내려앉았다.


글을 쓰고 있는데 동생이 전화를 했다.

"누나가 나이 들어서 혹시라도 이상한 행동이나 말하거든 네가 누나한테 바른 소리 해. 누나는 그런 말 해줄 사람이 없잖아."

"설마, 누나는 안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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