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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담 May 15. 2022

안녕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사용하는 말


어린이날 아침 일찍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부모님 댁에 갔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에 들어서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말 나하고 운전은 안 맞는다. 차선을 바꾸려면 한참 전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연락을 하지 않고 간 터라 귀가 어두운 엄마는 수돗물 소리에 '엄마'라고 불러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전날 영등포에서 사 왔다는 추어탕에 물을 더 넣어 양을 늘려 세 그릇을 만들었다. 이웃집에서 막 담았다고 준 열무김치는 풋내가 났지만 봄내음 같아서 맛있게 먹었다.


어제 심었다는 고추는 아직 자리를 못 잡아 축 늘어졌고, 씨를 뿌려놓은 상추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존재를 알렸다. 노랗게 폈을 수선화는 누런 잎사귀만 남았고, 잔디 사이로 잡초들이 빼곡했다. 자연은 분주한데 마을은 정말 조용했다.


잠깐 졸다가 칼국수를 만들어 점심을 먹고 나니 엄마가 아빠께 티브이를 끄라고 하셨다. 잠깐 침묵이 흘렀고 아빠가 말씀을 하셨다.


'너, 나중에 여기 와서 살 수 있겠니?'

'글쎄, 사회생활 안 해도 될 나이가 되면 여기 와서 꽃 가꾸면서 살아도 좋을 것 같아.'

'여기 인심이 안 좋아. 너 혼자 여기 사는 건 안될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 이 집을 팔자.'

'엄마 아빠는 어디서 살게? 난 지금 이 집 팔면 좋지. 융자 갚고 남은 돈은 노노 학비로 쓰면 되니까.'

'아니, 이 집 팔아서 너네 집 근처 작은 빌라를 하나 사라고. 우리가 거기 가서 살 테니까.'

(두 분은 내 명의로 된 집에서 살고 계신다.)

'빌라 살 거면 부천 집 팔아서 사면되지 왜 내 집을 팔아? 그리고 왜 내 옆으로? 큰엄마랑 사촌들 왔다 갔다 할 텐데 난 싫어.'

'너 오면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았는데, 답이 없구나. 너네 아파트 후문에 있는 **둥지 거기 좋던데.'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답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 두 알을 삼키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년 전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엄마 말에 융자 얻어서 시골집을 샀다. 이번에도 '네'라는 대답을 생각하고 두 분은 이사할 생각을 하셨을 텐데 싫다고 한 내 마음은 아직도 무겁다.


안녕달의 그림책 [안녕]을 꺼내 들었다. 슬프고 먹먹했다.

우리는 처음 만날 때도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말이 똑같다. 두 마음이 같기를 바라서일까? 아직 마지막의 안녕은 추측만 할뿐이다.


부모님이니까 부모님이라서 참기보다는 부모님이지만 무리하고 싶지 않다.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한다. 욕해도 좋다. 실망해도 좋다. 타인의 평가에 눈치 보면서 지내온 과거를 내려놓고 지금은 온전한 내가 되고자 한다.


인간 또한 혼자서 자라는 숲이지 부모의 기대와 계획대로 모양이 조성되는 조형 숲이 아닙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아이라는 숲이 자라는 걸 방해하지 않는 겁니다.
-기시미 이치로의 [마흔에게] 중에서

노노가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꼭 안아주고 앞으로 무얼 할 건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노노가 할 수 있지만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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