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식도암 판정을 받고 우리는 암흑 같은 시간을 보냈다. 발견도 늦었고, 온몸에 전이가 됐다는 진단에 절망적이었다. 나의 고민이 하늘에 계신 큰아버지께 전해졌던 걸까?
큰아버지는 꿈에서도 말씀은 안 하셨다.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눈으로 걱정을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지금도 꿈속의 큰아버지 모습이 생생하다.
동생과 나는 서로 분담을 하였다. 아침에는 동생이 저녁에는 내가 아빠께 전화를 했고, 못 가는 대신 매일 문자를 보냈다. 토요일에는 내가 아빠 병문안을 갔고, 동생은 주중 새벽에 아빠를 만나고 출근을 했다. 엄마는 하루에 여러 번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고, 병문안을 가서 아빠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동안 아빠와 통화한 내용 중에서 잊을 수 없는 말이 있다.
'내가 너네들하고 약속한 게 있잖아. 엄마하고도 약속했고. 아빠는 그걸 꼭 지킬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아빠의 의지가 담긴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꼭 이겨낼 수 있다고, 힘내라고, 사랑한다고 틈 나는 대로 문자를 보냈다. 첫 면회에서 나에게 엄마를 부탁하던 아빠는 알고 계셨단다. 사촌오빠가 면회 와서 손을 잡고 펑펑 울던 날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첫 입원하는 날 아빠 혼자 병원에 계시면 안 된다는 간호사의 말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간 엄마는 이틀 동안 아빠 간병을 했다. 다행히 엄마 가방에는 혈압약 몇 봉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빠는 간호병동으로 옮겼고, 거기서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받고 9월 16일 날 퇴원을 하셨다.
인터넷에 떠도는 항암치료는 젊은이들도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구토를 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말과 달리 아빠는 병원에 계시는 동안 몸무게가 1kg이 늘었고, 아무런 부작용 없이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퇴원 다음날은 엄마의 여든 번째 생신이었다. 부모님 댁에 모여 웃고 떠들며 아빠 퇴원 축하 겸 엄마 생신축하 모임을 했다.
아빠는 아산에서 천안 순천향대학까지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니셨고 다시 항암치료를 위해 9월 25일 두 번째 입원을 하셨다. 22시간짜리 항암치료를 다섯 번 연달아 받았는데, 마지막 날인 금요일 저녁에는 '아빠, 너무 힘들다'는 말씀을 하셔서 또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사랑해 아빠, 힘내세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10월 1일에 퇴원을 하신 아빠는 이틀을 계속 주무시면서 체력 보충을 하셨다. 그리고 10월 4일부터는 밖으로 나와 풀도 뽑고 간단한 집안일을 돕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