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는 하루
오늘을 아이가 써내려 간다면 어떤 날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은 쿵쿵 내려앉는다. 사람들의 말에 걸려 턱턱 숨이 막혀 올 때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렇게 내 마음을 치유하는 날. 그렇게도 되지 않는 날. 어제도 그랬고 오늘이 그랬다.
밥 먹다 막힐 것 같아 젓가락으로 한알 한 알 세다가 문자를 보냈다. 문자 옆의 숫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숫자가 사라지면 내 마음도 함께 지워질 것 같았다. 나는 어떤 기대를 한 걸까? 계단을 내려오며 심호흡을 한다. 다시 제자리. 오늘은 그랬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잘잘못을 떠나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은 날이었다. 지우개는 내 손에 쥐어져 있지만 쉽사리 꺼낼 수 없는 그런 날이었다.
휴대폰을 톡톡 건드렸더니 ‘토성의 아이 노노’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내가 지워버리기를 바랐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여섯 통의 전화가 나를 비웃고 있다.
“아들! 전화했어?”
“엄마! 나 시험 끝나고 친구 자전거 타고 내려오다가 차랑 부딪혔어.”
“다친 곳은 없어?”
“응, 난 괜찮아. 그런데 차가 상처가 나서 내가 주인한테 전화해서 사진 찍어 보내줬어.”
“안 다쳐서 다행이다. 노노야, 차 사진 찍은 거랑 전화번호 엄마한테 문자로 보내줄래?”
“보험 처리할 거냐고 해서 모르겠다고 했어.”
“여자야? 남자야?”
“남자였어.”
“보험 안돼도 걱정하지 마. 엄마가 알아볼게.”
“턱이랑 무릎이랑 아픈데 괜찮은 것 같아 엄마.”
“걱정 말고 푹 쉬고 있어. 사랑해 노노”
“엄마! 나도 사랑해.”
나는 괜찮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 대신 차주한테 전화할 때 얼마나 떨렸을까?
보험설계사와 대표번호를 통해 보험 적용이 되는지 알아보는데 아이는 괜찮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세 번째 통화한 담당자가 “아이는 다친 곳 없어요?”하고 묻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제가 일을 하고 있어서 아이를 못 봤어요. 턱이랑 무릎이랑 다쳤다는데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어요.”
시려오는 마음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향해 내뱉어버리고 울음을 꿀꺽 삼켜버렸다.
지워버리고 싶은 내 마음을 아이를 향한 마음이 먹어 버렸다.
사무실 문을 나오자마자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이제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사랑해 아들”하고 말했다.
“엄마, 조심해서와. 난 괜찮아.”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되는데 괜찮다는 말을 하는 아이 때문에 나는 더 괜찮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다가가 아이를 안았다. 턱이 부어 있었고 무릎도 부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생각하자 또 눈물이 났다.
“엄마, 내가 어떻게 넘어졌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내 몸보다 차를 먼저 살폈어.”
“제일 중요한 게 네 몸이야. 어디 다쳤는지 네 몸부터 살펴야 해.”
“친구들이 그러는데 내가 180도 정도 돌았대. 난 전혀 기억이 없거든.”
“얼마나 아팠을까.”하며 아이를 다시 안았다.
“난 이번 일로 다짐했어. 어른되면 전화를 꼭 받을 수 있게 해 놓을 거야.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니 너무 당황했거든.”
이건 아이가 나에게 외치는 소리였다.
"미안해, 엄마가 내일부터 전화기 꼭 켜놓을게.”
“차주한테 내가 꼭 보상해 줄 거니까 걱정 말라고 했어. 믿음을 보여줘야겠더라고. 난 우리 엄마를 믿었거든. 엄마가 꼭 보상해 줄 거라는 걸 알았어.”
“왜 너를 대학생인 줄 알았다고 했는지 알겠다. 그런 것 까지 걱정 안 해도 돼. 보험이 안돼도 엄마가 수리비 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아들이 괜찮아 다행이다.”하며 나보다 머리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안았다. “차주 하고 전화 통화하고 걸어오는데 그때부터 무릎이 아프더라.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엄마 보니까 졸려.”
“긴장해서 그래. 오늘 엄마랑 같이 잘까?”
“아냐! 엄마 편하게 자. 나 신경 쓰지 말고. 안아줘.”
졸리면 몇 번이고 '안아줘'를 말하던 아이는 훌쩍 자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이가 내게 와서 안기는데 또 눈물이 핑 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은 참 슬프다.
떨어질까 눈 안에 담아두느라 빨개지는 내 눈도 주인을 잘못 만나 참 고생이 많다.
잠든 아이방을 몇 번이나 기웃거렸다.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보고 얼굴을 만져보았다.
사랑스럽고 대견한 아들. 덜컹거리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얼마나 마음을 태웠을까.
일찍 퇴근해서 병원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었으면 좋으련만 엄마가 그러지 못해 미안해 아들.
오늘의 일을 노노가 써 내려간다면 어떻게 써 내려갈지 궁금해졌다.
아이 인생에 큰 사건으로 기억될 오늘.
엄마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잘 자라줘서 고맙고 아파하는 아들을 두고도 12시간 만에 집에 돌아오는 엄마라서 미안하고......
“엄마, 죄송하다는 말을 못 한 거 같아. 차 주인 만나면 꼭 전해줘. 아니면 내가 전화해서 말을 할게.”
“노노야! 엄마가 대신 전해 줄게. 아들은 그만큼만 딱 그만큼만 했으면 좋겠어.”
노노가 올바르게 잘 자라줘서 고맙지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도 남겨줘. 네 나이만큼 딱 할 수 있는 그만큼만 해결해 나가고 나머지는 엄마한테 미뤄도 돼.
엄마가 이만큼 밖에 안돼서 미안해.
네 마음이 어른처럼 훌쩍 자라 버린 게 나약한 엄마 탓인 거 같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덜컹거리는 엄마의 마음을 노노가 알아버려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너무나 조용히 보내는 것 같아서. 엄마 생각해서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태연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미안해.
오늘은 마음을 이어 붙여보려 해도 아이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너무 작은 조각처럼 흩어져 있어서 주워 담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모자의 마음이 덜컹한날 잠든 아이 곁을 서성거리는 못난 엄마인 나.
내일은 내 기분을 내가 정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