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보리 Oct 06. 2024

달리기, 가시적인 성과는 ...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그래 가시적인 성과. 나의 2024년 새해 목표. 


왜 하필 가시적인 성과인지 이해시키려면 잠깐 내 삶의 전반적인 흐름을 밝혀야겠다. 작가 소개에 밝혔듯이 나는 애가 셋인 워킹맘이다. 24살에 결혼해서 25살에 첫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학업을 제외하고는 딱히 내가 이뤄낸 성과라는 것이 결여된 삶이였다. 이런 말을 하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 것 자체가 큰 성과라고 말해주는 천사 같은 분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생의 최고의 성과라고 하는 가정을 꾸리는 일은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내가 열정을 쏟고 매일의 노력을 갈아 넣어서 이룬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내 20대와 30대 초반은 임신, 출산, 육아, 복직 * 3 = 으로 간추려 설명할 수 있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다가 내 안의 결핍이 열정 원기옥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내 몸밖에 없다’는 한혜진님의 영상을 봤다. 진짜 그런지 확인해보자. 내 몸을 바꾼다면 그 뒤에 나는 못 할 게 없다. 진짜 내 몸이 바뀌면 내가 계획하는 것을 다 해보자. 그렇게 6개월 정도 기간을 잡고 2월에 운동을 시작했다.      


정확히 3개월이 지나자 몸에 근육이 붙은 게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체지방을 걷어낼 차례였다. 유튜브에 한 번 ‘체지방 빼는 법’이라고 검색해보시라. 엄청나게 많은 영상이 있지만 결론은 유산소, 뛰어라, 이다. 1키로부터 시작했다. 1.5키로. 2키로. 조금씩 늘려가면서 주3~4회 공복 3키로를 뛰었다.      



<빨리 잘 뛰고 싶으면 천천히 뛰는 것부터 잘해라>     



 7분 페이스가 힘들면 8분 페이스로 뛰면 되고 8분 페이스가 힘들면 9분 페이스로 달렸다. 그 간단한 걸 몰라서 몇 년전의 나는 러닝을 즐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포기해버렸다.      


페이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자 모든 게 다 쉬워졌다.     


  아침에 일어나 나갔을 때 해가 황금색으로 떠오르는 광경, 분명 캄캄했는데 차차 날이 환해져서 초록색이 더 초록색으로 파란색이 더 파란색으로 눈에 들어오는 광경, 풀잎들 사이로 햇살이 비추고 바람은 그 사이를 비집고 불어와 그림자가 하늘하늘 흔들거리는 광경. 매미가 울고 풀벌레가 울고 새가 날고. 작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도심 속 손바닥만한 자연에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한여름 공기와 습기가 어우러져 멈춰있는 대기 속을 내 몸으로 온전히 헤쳐나갈 때 땀이 미친 듯이 흘러서 종아리와 팔뚝까지도 흐르는데 기분이 상쾌했다. 비가 오면 내 몸을 다 맡기고 시시각각 계속해서 젖어가며 달리는 것도 자유롭다.       


  물론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마음이 괴로웠던 시기에 뛰러 나가면 시작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뛰면서 길 위에 생각들을 던져버리려고 했다. 매일 이렇게 생각들을 길 위에 던져놓고 숨겨놓자. 적어도 이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조금 덜 괴롭겠지. 정확히 한 달도 안되서 나는 내가 뭐 때문에 괴로웠는지조차 잊었다. 길 위에도 괴로움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계속 달리다보면 결국에는 이 길과 나만 남겠구나.   

   

  아침 러닝은 그 자체로 명상이면서 기분 상승고도를 타기 위한 회전계단이면서 오늘 하루를 다 살아내기 전부터도 나는 오늘 하루를 잘 시작했다는 믿음이였다. 아침 30분 투자로 내 자신이 좀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한테는 때론 그런 믿음 자체가 더 중요하다. 달리기의 가시적인 성과는 쌓이는 나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체지방이 빠졌냐고? 운동 시작한 2월달에 나는 체지방 26%정도였다. 바프끝나고 잰 인바디에서는 11%였다. 몸무게와 인바디를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눈에 보였다. 팔, 다리, 복부가 점점 얇아졌다. 내가 이렇게 얇은 팔뚝을 가진 적이 있었나. 복부는 따로 힘을 주지 않아도 복근이 선명했다. 평생 하체 비만인줄 알았는데 허벅지 사이가 붙지 않고 달릴 때도 쓸리지 않았다. 매일 매일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이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다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달리기, 그 시작은 절벽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