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운동화만 있으면 된다.
는 생각에 시작했다. 언제냐면 무려 2015년. 약 10년전 당차게 NRC(Nike Running Club) 어플을 다운 받았다. 그 해에 딱 두 번 뛰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1년. 운동센터에서 단체로 코로나에 감염되고 그들의 동선이 모두 공개되면서 ‘방역지침 안 지키고 그럴 줄 알았다는등’의 마녀사냥을 본 후라 왕쫄보인 나는 감히 크로스핏에 갈 수 없었다. 차선이 러닝이였다. 뭔가를 다짐하면 내 자신을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나는, 그 1단계로 18만원짜리 러닝화를 질렀다.
당시 나는 기차로 한 시간 반 거리를 통근하던 터라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절벽에서 밀어버리기 2.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 갈아 입고 나가기 싫었다.
절벽에서 밀어버리기 3. 잠옷을 입고 나갔다. (아,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새벽 5시에 수면 바지입고 달린 건 너무 했다고 생각한다.)
러닝 장소까지 가서 준비 운동을 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절벽에서 밀어버리기 4.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뛰었다.
그 결과는 맛으로 표현되었다. 목에서 혈관 하나가 터진 듯, 피 맛, 쇠 맛이 났고 숨을 몰아쉬다가 곧 입 밖으로 내 심장을 토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 어디서 봤는지 1km당 페이스는 6분 30초를 넘기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시작부터 최선을 다해 달렸다. 초보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보통 문제가 생긴다. 달리기를 막 시작한 나에게 630페이스는 언감생신이였고 3km이상 달릴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씻을 수도 없었다. 요동치는 심박수를 진정시키려면 드러누워야 했다. 급기야는 코로나보다 달리러 나가는 게 더 무서웠다. 이 고통스러운 달리기를 당연히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멍청할 수가..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도대체 왜 이런 스포츠를 한다고 했을까?’
2021년 18만원짜리 러닝화를 신발장에 집어처넣으며 내가 한 말 같겠지만 아니다. 2024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22분 55초의 신기록까지 세우며 금메달을 딴 시판하산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신인류’라고 불리는 시판 하산, 그녀도 나와 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왜 달리는가?’
하산씨는 그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달리기 씨앗은 이러했다. 유튜브에서 BBC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를 봤다. 문명을 거부한 아프리카 원시부족이 사냥하는 내용이였는데 방법이 독특했다. 사냥감으로 한 마리를 고르고 그 놈을 향해 달린다. 당연히 사냥감은 도망간다. 그 뒤를 원시부족 무리가 쫓아 달린다. 그렇게 며칠을 달리면 사냥감이 지쳐 쓰러진다. 그럼 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유유히 사냥감을 들고 다시 되짚어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마치 한국 사람으로 살면서 젓가락질도 못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자존심이 상해버렸다. 인간으로 한 몸 갖고 태어나서 문명에 길들여져서 몸을 쓰는 법도 잊은 게 영화 월-E의 우주선에 살면서 자기 발로 걷지도 못하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만약에 원시시대로 돌아가거나 외계인이 침략해오거나 하는 재앙이 일어나면 나는 뛰지 못해 죽겠구나. 도망가지도 못하고 사냥감을 잡지도 못하니까 나는 일찍 죽겠구나. (영화로 따지면 초반 10분 안에) 내 가족도, 내 아이들도 못 지키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겠구나. 문명의 노예로 살다 죽진 않겠다! 내가 받은 이 한 몸 단련시켜서 내 소중한 사람들은 내가 지키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달리기, 정면 돌파하자. 라는 다소 비약적인 과정을 거쳐 거창한 다짐으로 시작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끝이 났었다.
2024년 새해 결심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자>를 세우고 나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여정은... 다음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