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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덕대게 Apr 01. 2024

예술이라는 구원의 종교

<릴리슈슈의 모든 것> - 이와이 슌지

나에게 예술은 곧 종교이다. 얼룩진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가상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진리를 탐닉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 바로 예술이다. 2001년 개봉한 이와이 슌지의 걸작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는 '음악'이 소외된 10대 청소년들에게 주는 영향력에 관한 탐미주의적인 묘사로 가득 차있다. 성장의 과정에서 예술이란, 그 형이상학적인 - 보이지 않는 음악이 주는 신비함, 영화의 표현에 따르면 '에테르'가 그들의 광활한 우울을 대적할 유일한 도구였다. 그들은 '릴리슈슈'라는 가상의 인물을 교주로서 숭배한다. 형체도 없고 본명도 모르는 가상의 인물을, 단지 음악이라는 연결고리 하나만으로 그들의 우상으로서 섬긴다. 성장의 과정에서 상처투성이인 10대들이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 그들은 가상의 공간으로 뛰어든다. 예술은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에게 보금자리를 전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시금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가게 하기 위한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인가.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소외된 10대들의 초상과 예술의 기능론적 코멘트를 엮어 인터넷 세상 - 익명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예술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묻고 있다. 이 시대에서 과연 예술이란, 소외된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예술을 숭배한다. 소위 '종교'란 한 인간의 본질을 정해주는 요소이다. 인간은 아무런 이유 없이 태어났고, 부조리하게 탄생했다. 이러한 무의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해결책이 바로 종교이다. '하느님이 나를 창조하셨다'라는 말 하나만으로, 곧 자아의 본질과 존재 근거가 전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에게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예술 때문에 살아간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너무나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어서도, 내 삶 자체를 소중히 여겨서도 아니다. 나는 예술과의 담론이 너무 재미있고, 아직까지 이 활동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다. 


우울의 수렁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준, 말하자면 소위 '하나님' 같은 존재가 나에게는 예술이다. 나는 이를 숭배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내 주위에 편재하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시에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는 이 사랑스러운 존재와의 담화는 삶의 본질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예술인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예술인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나이지만, 삶의 본질이 곧 직업이 된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삶이 있을까. 그 상황이 온다면 이토록 광활한 무의미의 수렁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기를 기대할 만할 것이다. 


예술과 삶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유한한 삶을 무한히 확장시켜 주는 요소가 바로 예술이다. 지독하게 우울한 날에도 어떤 날에는 함께 울어주고, 어떤 날에는 웃겨주는 존재가 예술이다. 예술은 고정적이지 않다. 이 요소는 분명히 살아 움직인다. 수용자의 감정에 따라, 수용자의 조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예술적 삶이란, 나에게는 곧 본질에 닿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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