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덕대게 Apr 03. 2024

삶을 존속시키는 저마다의 체리 향기

<체리 향기>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는 질문하는 영화이다. 이토록 부조리하고 고된 당신의 인생을 견디고 존속하게 만드는 '체리 향기'는 무엇인가. 극 중 주인공이 마주하는 박제사는 과거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결심하여 목을 매달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그가 목을 매달려는 나무에서 달콤한 체리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고, 그 달콤함에 생의 감각이 되살아나 지금까지 그의 삶을 존속할 수 있었다. 삶에 정해진 실존 근거나 본질은 없다. 인간은 실존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저마다의 존재 가치를 입증할 뿐이다. 


내 삶의 체리 향기는 무엇인가. 고통스러운 삶임에도 이어가는 삶의 원형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마치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영화라는 허구가 한 개별자의 삶을 존속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2차원의 스크린에 불과한 이미지의 나열이 과연, 한 인간의 삶의 가치까지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인가. 그러한 점에서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영화이다. <체리 향기>는 결말부에 엄청난 형식적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지금껏 관객이 따라왔던 주인공 '버디'의 일대기가 영화 촬영 현장에 불과했고, 이 모든 것은 영화라는 허구의 틀 안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시종일관 다큐멘터리적인 연출을 고집했던 영화 <체리 향기>의 연출은 한순간에 전복된다. 실제에서 허구로. 마치 실제와 허구는 원래 맞닿아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같은 이치로, 인간의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영화의 주제와 형식이 통일을 이루는 대목이다. 삶이 죽음을 내포하고 있듯이, 때로 허구는 진실과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라는 2차원의 허구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본질이 되고, 진리가 되며 이데아가 된다. 더 나아가서는, 고통스러운 삶임에도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하나의 '체리 향기'가 된다.

때로 삶을 살아가며 체리 향기의 달콤함을 망각할 때가 있다. 쉽게 설명하면, 삶의 가치를 잃을 때가 더러 있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마치 그의 영화 자체가 잊고 있던 체리 향기가 되어주겠다고 나서는, 따스한 손길 같은 작품이다. 허구와 진실의 위계를 완전히 무너뜨림으로써 얻게 되는 허구의 미학. 그 속에서 아스라하게 피어오르는 진리의 달콤함. 키아로스타미는 영화라는 허구 자체에 찬사를 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작품 자체가 일종의 '체리 향기'가 되도록 권유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씨네필들이 삶이 주는 부조리의 수렁에 빠졌을 때, 그 부조리의 늪에서 <체리 향기>를 감상했다는 하나의 '체리 향기'는 되살아나 생의 감각을 일깨워 줄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참 신기한 것은, 그 모든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영화적 순간 - 푼크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고정된 하나의 허구가 아니다. 수용자의 감정 상태와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일종의 유기체이자 생명체이다. 영화만큼 유연한 예술은 없다. 1초에 24번, 죽었다 살아났다는 반복하는 사진들의 집합. 그 이미지들의 열거법이 주는 진리로의 발돋움. 이토록 허구적임에도 수많은 사람이 쫓는 것은, 분명히 그 허구적 미학에 빠져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체리 향기'이자, 세계의 본질에 닿는 아이러니의 허구이다. 




이전 06화 예술이라는 구원의 종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