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덕대게 Apr 05. 2024

봄날의 춤

안은미 - <거시기 모놀로그>

좋은 기회가 닿아 국립정동극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봄날의 춤' 3부작 중 안은미 안무가의 <거시기 모놀로그>를 관람했다. 작품 자체가 상당히 여성주의적 모티프가 강하고, 전위 예술적 연출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던지라 무용 공연을 처음 경험하는 나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결국에 작품은 구시대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통받았던 당대 여성들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것이 공연의 주된 목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나의 시선으로 본 현대 무용의 미학은 영화와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와다. 고통의 승화, 몸짓의 반작용. 추상적인 관념을 가장 역동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전반적인 공연은 연극적 서사에 무용이 덧입히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인간이 살아가며 느끼는 가장 강한 실존적 근본 경험을 인간만이 지닌 개별자적 특수성 -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어떤 화려한 동작이 없더라도, 그 육체의 움직임 하나가 이미지가 되고, '모놀로그'임에도 조명 밖 - 외화면에 상대방이 존재하는 듯한 팬터마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상투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무용이야말로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살아있는 예술'에 가장 가까운 분야일 것이다. 대부분의 예술은 창작자의 손에서 한 차례 완성된 후 수용자에 닿는다. 그러나 무용은 실시간으로 3차원의 세계 내에서 관객과 같은 공기를 공유하며 완성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관객의 시선은 또 다른 하나의 관념이 되고, 시선의 교류는 안무가의 또 다른 영감이 되며, 시시각각 역동적인 움직임에 미세한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현대 무용은 포스트 모더니즘 영화와 같은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다소 놀랄 정도의 시각적 자극과 무대 장치를 활용한 실시간의 충격,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극의 동력으로 삼아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역동적 인간의 초상을 목격한 관객은 극에 온전히 '몰입'하여 주체적인 태도로 공연을 해석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고, 자연스레 극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은 강화된다. 현대 무용은 몸과 육체의 순리를 거부하지 않는다.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쓸리면 쓸리는 대로, 그저 중력이라는 세상의 이치에 몸을 맡길 뿐이다. 그 수동성과 능동성 사이에서 인간의 본질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현대 무용 관람의 미학이리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안무'인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지독한 우울을 마주하여 공황 발작을 일으키며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다면, 그것은 '안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삶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한 예술가의 무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무용의 미학은 여기에서 나온다. 사실상 인간은 하루종일 '무용'을 하는 상태로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한바탕의 춤이요, 무용 공연일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마주한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고통을 외부로 발산하는 방식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한다. 비단 고통뿐만이 아니다. 그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든, 인간의 육체는 내면을 시각화하는 발현적 역할을 행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 육체적 승화를 아름답게  - 연속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가장 미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무용수의 역할일 것이다. 우리가 무용수의 한 동작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삶이 곧 셔레이드고 제스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용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어려운 영역의 예술이다. 


삶이라는 무용은 영화라는 내러티브 속에서 행해진다. 이토록 역동적인 몸짓은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는 삶이라는 플롯을 지닌 채로 서사화된다. 어쩌면 삶이란 예술과 불가분한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우울을 승화시키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어쩌면, 영화의 한 쇼트가 될 수도 있고 현대 무용 속 하나의 '안무'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삶과 예술은 떼어놓을 수 없는 - 반영과 재현의 관계이다. 


이전 07화 삶을 존속시키는 저마다의 체리 향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