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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덕대게 Aug 24. 2024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상)

<이반의 어린시절>~<잠입자>

서문: 시간과 기억의 작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40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가 남긴 영화들은 단순한 예술적 작품을 넘어,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철학적 담론의 장을 제공한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그의 영화는 영혼의 탐구이며, 인간 실존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5년으로, 그의 사후 20여 년이 지난 후였다. 처음으로 개봉된 영화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희생>(1986)이었고, 이후 <향수>(1983)가 이어서 상영되었다. 한국 관객들은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거꾸로 만난 셈이다. 이는 타르코프스키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으나, 동시에 그의 작품에 대한 독특한 접근 방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적인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예술적 영감은 러시아의 대지와 문화, 특히 러시아 정교회에서 비롯되었다.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러시아 문학과 예술의 전통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하고자 했다. 그의 영화가 깊이 있는 이유는 단순히 서사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 대지에서 자라난 정서와 철학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면서, 20세기 영화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글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깊이 있게 조망하고자 한다. 그의 영화가 한국에서 처음 소개된 후, 많은 연구와 비평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과 사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어려운 과제이다. 우리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통해 그가 탐구한 인간 실존의 본질과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영화는 철처한 철학적 성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타르코프스키 작품관의 공통적 특징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상징성과 주제의식이 깊이 얽혀 있으며, 그의 작품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이 있다. 첫째, 불과 물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핵심적인 상징들로, 각각 파괴와 창조, 정화와 희생, 그리고 생명과 초월, 정화를 의미하는 요소로서 빈번하게 사용된다. 불은 인간 내면의 갈등과 영적 재탄생을 암시하며, 물은 시간의 흐름과 초월적 존재와의 연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불은 그 자체로 파괴적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예컨대 《희생》에서 불타는 집은 주인공의 영적 희생을 통해 세상의 구원을 시사한다. 반면, 물은 존재와 시간의 영속성을 나타내며, 주인공의 내적 세계와 기억, 감정의 흐름을 반영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처럼 불과 물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속에서 대립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의미를 지니며, 인간의 영적 탐구와 세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주인공의 나이는 작품의 연대기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모하며, 이는 감독 자신이 영화 속에 투영된 자전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종종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이를 먹어가며, 이는 감독의 철학적 사유와 삶의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반의 어린시절>에서는 아이가 주인공이고, 그 다음 작품에서는 청년이, 그 다음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이러한 나이의 변화를 통해 타르코프스키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시간의 불가역성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삶과 죽음, 기억과 소멸의 문제를 심오하게 고찰한다.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에서 가족,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모는 주인공의 정신적, 감정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부재나 존재 자체가 주인공의 정체성과 내적 갈등을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중요한 주제로, 아버지는 종종 주인공에게 전통과 기억, 그리고 정신적 유산을 전달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러한 관계는 감독 자신의 개인적 경험 - 어린 시절 시인이었던 아버지가 가정에 다소 무심했던 - 과 연결되며,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느끼는 고독과 그리움은 타르코프스키의 자전적 고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제1장: 소련 영화의 새로운 길을 열다 - 타르코프스키의 초기 영화와 미학적 전환


1. 소련 영화의 역사적 배경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과 소련 영화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3년 스탈린의 죽음 이후, 소련은 이른바 ‘해빙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는 후르시초프가 집권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억압이 완화되고, 창작의 자유가 어느 정도 회복되던 시기였다. 이전까지 교조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영화 예술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해빙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이 등장하면서 소련 영화는 미학적, 이념적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는 <거울>을 만든 이후 창작 이념과 계속해서 충돌하는 소련 정부로 인해 이탈리아로 망명을 결정하고, 이탈리아로 넘어가 <향수> (=노스탤지어)를 만든다. 그의 유작, <희생>까지, 그의 작품은 서방 세계의 필름 메이킹 자원으로 만들어졌다. 오늘의 글은, 그의 초기작을 시작으로 그가 소련에서 만든 작품인 <거울>까지 다루어 볼 것이다.


이 시기에 타르코프스키는 첫 장편 영화인 <이반의 어린 시절>(1962)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소련 영화의 전통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미학적 방향을 제시했다. 타르코프스키는 사회주의 이념에 기반을 둔 기존의 소련 영화들과는 달리, 러시아 문학과 예술 전통을 자신의 영화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2. <이반의 어린 시절> - 새로운 소련 영화의 탄생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첫 장편 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은 단순한 전쟁 영화로서의 틀을 넘어서는 독특한 형식과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한 소년의 내면적 갈등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인간 실존의 문제를 탐구한다. 특히 타르코프스키는 주인공 이반을 두 가지 상반된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이 영화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이반이라는 인물이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 아닌, 살아있는 이반과 이미 죽은 이반이라는 이중적 존재로 나타난다. 이 두 이반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며, 그로 인해 이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분열된 존재로 그려진다.


이반의 이중적 존재는 영화의 형식적 특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영화는 이반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장면들을 통해, 전쟁이 어린 소년에게서 정상적인 어린아이의 희망과 삶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살아있는 이반은 전쟁터에서 정찰병으로 활동하며 전쟁의 잔혹함 속에 깊이 빠져들지만, 그의 내면은 이미 죽음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반면, 죽은 이반은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존재로서, 더 이상 삶의 영역에 머물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이반이 꿈속에서 경험하는 여러 환상적인 장면들은 그가 이미 생전의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상징하며, 그의 내면이 죽음의 세계와 더욱 가까워졌음을 암시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에서 상-하의 공간적 대립을 통해, 살아있는 이반과 죽은 이반 사이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 상-하의 대립 구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상징성을 뒤집어, '상'이 오히려 '하'의 의미를 지니게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우물 장면에서 이반은 위에서 아래로, 즉 생의 영역에서 죽음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는 그가 더 이상 삶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물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우물 속에서 이반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의 내면적 상태와 죽음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며, 이반이 이제 더 이상 생의 영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죽은 이반은 살아있는 이반과 달리,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는 살아있는 이반처럼 삶 속에서의 경험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상태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죽은 이반의 시선은 관객에게 죽음의 메타포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살아있는 이반이 전쟁터에서 겪는 잔혹함과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되며, 영화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실존적 위기를 심도 있게 다룬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백그라운드로서만 사용하는 것을 넘어,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시도한다. 그는 이반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적 영향을 탐구하며, 이반이 처한 극한 상황이 그의 내면적 갈등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반의 꿈속에서 나타나는 장면들은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며,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죽음의 공포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의 결말에서 이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갈망 속에서,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과정을 겪는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결말을 통해 이반의 영혼이 구원받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영화는 갈체프가 독일군의 문서 보관소에서 이반의 죽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고, 살아있는 행복한 이반이 햇빛 속에서 웃으며 달려가는 장면으로 끝맺음한다. 이 장면은 이반이 생전에 겪지 못했던 삶의 기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그의 영혼이 죽음 속에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타르코프스키는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반이 뛰어다니는 화면의 전경에는 죽은 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이는 이반의 삶이 결국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다른 영화들처럼, 물과 불, 자연의 근원적 요소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물과 거울을 통한 자아성찰, 그리고 시점의 급격한 상-하 이동은 이반의 내면적 갈등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반의 어린 시절》을 통해 소비에트 전쟁 영화의 전통적 틀을 넘어, 전쟁이 인간 존재에 미치는 심리적, 영적 영향을 탐구하고자 했다. 그는 이반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단순히 물질적 규모나 정치적 사건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인간 실존의 문제로 표현한다. 이반의 이중적 존재는 인간이 전쟁 속에서 겪게 되는 내면적 갈등과 실존적 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타르코프스키는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그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제시한다.


이 영화에서 이반은 전쟁의 희생양을 넘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분열된 존재로 그려진다. 그의 내면적 갈등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쟁의 참혹함을 넘어선 인간 실존의 문제를 탐구하게 만든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드러내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영화의 결말에서 이반이 죽음 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그 가능성이 끝내 현실화되지 못한 채 죽음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장면은 타르코프스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3. <안드레이 루블료프> - 예술가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는 단순한 전기 영화의 전통을 넘어, 중세 러시아의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삶을 통해 예술의 본질과 창조 행위,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루블료프가 겪는 내면적 갈등과 고통, 그리고 예술적 성숙을 탐구하며, 타르코프스키는 이를 통해 예술가가 마주하는 도덕적 딜레마와 영적 위기를 심도 있게 그려낸다. 영화는 여덟 개의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연결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에피소드는 루블료프의 예술가로서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프롤로그는 상징적 서사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한 농부가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려는 시도는 창조적 도전과 예술적 열망을 상징하며, 기구가 하늘로 오르다 추락하는 모습은 전통적인 이카루스 신화의 상징을 전복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술가가 창조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희생, 그리고 실패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기구의 추락은 실패와 좌절을 암시하면서도, 새로운 창조적 시도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역설적 상황을 드러낸다. 이는 예술가가 겪는 내적 갈등과 창조적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영화는 중세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역사적 배경을 무대로 한다. 당시 러시아는 타타르의 침략, 내란, 종교적 갈등 등으로 인해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루블료프는 예술가로서의 사명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자신의 신앙과 예술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타르코프스키는 루블료프의 삶을 통해 예술가가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겪는 도덕적 갈등과 무력감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루블료프의 여정은 그가 직면하는 여러 갈등과 도덕적 딜레마를 통해 점진적으로 심화된다.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광대의 이야기’에서 루블료프는 예술가로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이 에피소드에서 루블료프는 한 광대의 연기를 보게 되는데, 이 광대는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권위에 대해 풍자적인 이야기를 한다. 광대는 루블료프에게 예술의 자유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광대는 결국 당국에 의해 체포되고 고문당하는데, 이는 루블료프가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위험을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 이 장면은 예술이 단순한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의 중심 에피소드 중 하나는 타타르의 침략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타르코프스키는 타타르 군대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러시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루블료프가 경험하는 폭력과 파괴의 참상을 보여준다. 타타르 군대는 성당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하며, 루블료프는 이 잔혹한 현실을 목격하고 인간의 잔혹함과 폭력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이 장면은 예술이 폭력과 파괴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루블료프의 영적 위기를 심화시킨다.


루블료프는 타타르 침략 이후 예술적 사명을 포기하고, 침묵의 서약을 한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참혹한 현실에 압도당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느낀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술가가 사회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겪는 도덕적 갈등과 무력감을 심도 있게 묘사한다. 루블료프는 자신이 경험한 폭력과 파괴 앞에서 예술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이는 그가 예술적 사명을 포기하는 이유가 된다.


영화에서 불과 물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불은 루블료프의 창조적 열망과 고통을 나타내며, 예술적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물은 정화와 재탄생을 상징하며, 영화의 전반에 걸쳐 루블료프가 직면하는 도덕적 딜레마와 내적 변화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프롤로그에서 기구가 넘어야 할 강과 마지막 장면에서 내리는 비는 루블료프가 도달한 내적 평화와 초월적 경지를 상징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상징들을 통해 예술가가 현실과 고통 속에서 성숙해가는 과정을 형상화하며, 예술 창조의 본질을 탐구한다.


루블료프의 내면적 갈등과 성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키릴이다. 키릴은 루블료프와 함께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인물로, 두 사람은 영화 내내 상반된 성향을 보여준다. 키릴은 루블료프와 달리, 신앙적 엄격함보다는 세속적 욕망과 질투심에 휩싸인 인물로 그려진다. 키릴은 예술가로서의 성취에 대한 욕망이 크지만, 그 욕망은 루블료프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으로 변질된다. 이로 인해 그는 루블료프의 예술적 성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 한다.


여기서 키릴과 루블료프의 관계는 심리학적 차원에서 깊은 의미를 갖는다. 타르코프스키는 카를 융의 그림자 이론을 통해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융의 그림자 이론에서 그림자는 자아가 의식적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그러나 자아의 심층에 내재한 부정적 성향을 의미한다. 루블료프는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예술적 이상을 구현하는 상징적 자아로서, 그의 존재는 내적 갈등과 불안이 억제된 이상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완전성 이면에는 억압된 그림자가 잠재해 있다. 키릴은 이 억압된 그림자의 구체화된 형태로, 루블료프의 내면에 잠재한 인간적 나약함, 질투, 인정 욕구, 세속적 성공에 대한 갈망을 표상한다.


키릴의 내적 여정—광대를 고발하고, 수도원을 떠나며, 세속적 세계에서 실패한 후 다시 회귀하는 과정—은 루블료프가 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억눌렀던 원초적 욕망과 두려움의 외화로 볼 수 있다. 루블료프가 이교도 축제에서 경험하는 심리적 혼란과 도덕적 위기는, 키릴이라는 그림자와의 대면을 통해 더욱 강렬해진다. 이교도 축제에서 루블료프가 목격한 장면들은 그가 의식적으로 직면하기 두려워했던 내적 불안과 도덕적 불완전성, 그리고 인간적 한계를 상징하며, 키릴은 이러한 감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루블료프가 궁극적으로 도달한 예술적 승화와 내적 완성은, 키릴이라는 그림자적 요소와의 통합을 통해 가능해진다. 키릴의 귀환과 속죄는 단순한 개인적 회개를 넘어, 루블료프의 자아가 억압된 그림자를 수용하고 이를 통합하는 심리적 과정의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융의 이론에 따르면 자아는 그림자와의 대결과 통합을 통해 온전한 개별화에 도달하며, 이는 루블료프가 예술적 절정에 도달할 수 있는 심리적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키릴과 루블료프의 관계는 심리적 자아가 억압된 그림자와 대면하고 이를 통합하는 변증법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루블료프가 창조적 절정에 도달하는 예술적 승화는, 그가 키릴이라는 그림자를 자아의 통합된 전체성 안에 수용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이는 융이 제시한 '개별화 과정'의 완성을 의미하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심리적 성장과 변화를 탐구하는 정신 분석적 대서사시임을 시사한다.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루블료프는 젊은 종 제작자 보리스카를 만나게 된다. 보리스카는 아버지로부터 종 제작의 비법을 전수받지 못한 채, 혼자서 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서도, 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을 경험한다. 루블료프는 보리스카의 열정과 결단력을 보며, 자신이 잃어버렸던 예술적 사명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보리스카의 이야기는 루블료프에게 예술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희생을 담고 있는 신성한 행위임을 깨닫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리스카가 만든 종이 성공적으로 울려 퍼지는 순간, 루블료프는 자신의 예술적 사명을 다시 받아들이고 붓을 다시 들기로 결심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술이 인간의 고통과 희생을 넘어서는 신성한 행위임을 강조하며, 루블료프가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어떻게 회복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루블료프의 예술적 성취는 단순히 개인적 승리를 넘어, 인간의 고통과 희생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결국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예술가의 내면적 여정과 성숙, 그리고 예술이 지닌 초월적 의미를 탐구한 작품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를 통해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가가 현실과 고통 속에서 어떻게 진정한 미학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성찰한다. 이 영화는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예술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며, 타르코프스키가 말하는 '승리의 감정'을 통해 예술이 지닌 궁극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그러한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예술적 대서사시이자, 고통을 통해 탄생한 미학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묻는 철학적 성찰의 장이다.


4.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적 미학 - 시적 리얼리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그만의 독특한 미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는 영화를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보지 않고, 시적 리얼리즘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는 예술적 도구로 활용했다. 그가 장 르누아르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 또한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그의 영화는 감정의 흐름과 기억의 연상을 통해 서사를 구성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만든다. 타르코프스키는 몽타주 기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영혼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영화에서 시간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영화를 통해 시간의 본질과 그것이 인간의 존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모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지를 영화적 형식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시적 리얼리즘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본질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며, 그의 영화를 독특하고 깊이 있는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제2장: 기억의 거울 -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주요 테마


1. 기억과 시간의 본질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기억과 시간은 중심적인 테마다. 그의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작용이 인간의 내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시간과 기억을 단순히 서사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에서 시간을 단순한 흐름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을 인간의 실존적 상태와 연결된 중요한 요소로 본다. 시간은 인간의 내면적 변화와 영적 여정을 반영하는 거울이며, 그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한다. 타르코프스키는 기억을 통해 시간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형성하는지를 탐구한다. 그의 영화에서 시간은 영혼의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기억을 통해 되살아나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킨다.


2. <솔라리스> - 기억의 물질화와 인간의 내면


<솔라리스>(1972)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중에서도 특히 기억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는 스타니슬라프 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인간의 무의식을 물질화시키는 힘을 가진 '솔라리스의 바다'라는 설정을 통해 기억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다. 영화는 솔라리스 행성의 바다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기억을 물질화하여, 그것을 현실 속으로 끌어내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 캘빈은 이 바다의 힘으로 인해 오래 전 자살한 아내 해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 해리는 캘빈의 기억 속에 존재하던 이미지가 물질화된 것이며, 그는 그 이미지가 실제 아내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이 과정에서 타르코프스키는 기억의 모호성과 그것이 인간의 실존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캘빈이 느끼는 죄책감과 공포는 기억이 현재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힘임을 보여준다.


<솔라리스>는 기억의 물질화라는 설정을 통해, 기억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를 통해 기억이 인간의 정체성과 실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드러낸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잔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1972)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종종 비교되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 전혀 다른 철학적 탐구를 시도했다. 큐브릭이 우주의 거대함과 인류의 진화를 주제로 삼았다면, 타르코프스키는 인간의 내면, 특히 무의식과 인식의 본질을 탐구한다. 《솔라리스》는 타르코프스키의 깊이 있는 심리적 탐구와 상징적 표현이 결합된 작품으로, 인간 인식의 한계와 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중심에는 인간의 인식론에 대한 메타포가 자리 잡고 있다. 솔라리스 행성의 '바다'는 이 영화의 핵심적 상징으로, 인간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이 가진 인식론적 역설을 상징한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과 두려움을 구체화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실재(reality)와의 대면을 상징한다.


라캉의 이론은 이 영화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응시’라는 개념은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라캉은 “우리는 타자가 지각하는 나 자신의 목소리에 접근할 수 없듯이 타자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 즉 '응시'에 근접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인간이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 또한 인간을 응시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무의식을 재발견한다는 의미이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바로 이러한 응시의 공간이다. 크리스와 다른 연구원들이 바다를 연구하고 응시할수록, 그 바다는 그들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그 무의식이 투영된 ‘손님’을 생성해 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크리스의 아내 하리는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크리스의 억눌린 죄책감과 무의식적 욕망이 구체화된 실재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라캉의 용어로 하리는 크리스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대상 a’이며, 이는 크리스가 현실에서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의 현현이다. 크리스는 하리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라캉이 말하는 ‘주이상스’, 즉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과잉 향락을 경험한다. 주이상스는 현실에서 완전히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이 실재와 만나면서 발생하는 고통스러운 쾌락을 의미하며, 이 쾌락은 크리스가 하리와의 관계를 반복하며 점차 중독되어 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무의식의 공간이자, 타자의 응시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라고 말했다. 이는 솔라리스의 바다와 크리스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인용이다. 크리스가 바다를 연구하고 그 안을 들여다볼수록, 바다는 그의 무의식을 들여다보아 표면에 '섬'과 '손님'을 생성한다. 이 섬은 크리스가 무의식 속에서 갈망하던 것을 구체화한 실재로서, 크리스는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하리와 대면하게 된다.


크리스의 동료 연구원들은 이러한 실재를 상징으로 덮으려 하지만, 이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크리스는 하리와의 반복적인 만남을 통해 잉여 향락을 경험하며,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점차 정서적으로 그녀와 교감하게 된다. 크리스는 끝내 하리와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잃고, 자신이 바라보던 바다의 심연 속에서 무의식의 깊은 공간으로 퇴행해, 솔라리스의 바다 섬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 결말은 크리스가 자신의 무의식 속에 빠져, 주이상스의 쾌락과 고통 속에 갇히게 된 것을 상징한다.


영화 속에서 '손님'들은 인간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인간답다. 특히 하리는 거의 인간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그려지며, 크리스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성의 본질과 욕망의 근원을 탐구하게 만든다. 타르코프스키는 몽환적 환상과 현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으며, 시적 리듬을 통해 영화적 서사를 이어간다. 이는 현실과 무의식, 상징과 실재를 혼재시키는 방식으로, 인간이 지닌 '무의식'이 타자의 담론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인간의 자아정체성과 주체성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크리스는 솔라리스의 바다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며, 이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크리스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여정이며,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한 결말은 실재와의 대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솔라리스》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와 무의식의 심연을 탐구하는 심리적 대서사시로서, 인간이 지닌 인식의 역설과 무의식의 복잡성을 심도 있게 드러낸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욕망과 고통, 그리고 자아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솔라리스》는 인간 내면의 심리적 탐구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예술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3. <스토커> - 인간의 내면과 욕망의 실체


타르코프스키의 또 다른 대표작인 <스토커>(1979)는 인간의 내면과 그 욕망의 실체를 탐구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인간의 가장 은밀한 소원을 실현시키는 힘을 가진 '방'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세 명의 남자가 이 방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의 내면과 욕망이 드러난다.


<스토커>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준다. 방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 방에서 실현된 욕망에 직면하게 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 욕망이 어떻게 억압되고 왜곡되는지를 탐구하며, 그 욕망이 실현될 때 발생하는 혼란과 불안을 그려낸다.


<스토커>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과도 같은 영화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욕망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호한지를 보여준다. 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 욕망이 실현될 때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탐구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실존적 위기를 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1979)는 그의 영화 경력에서 가장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작품으로, 깊은 철학적 탐구와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신성과 믿음, 인간 내면의 고뇌를 심미적으로 그려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은 철학적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타르코프스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 끌어낸 연출 원칙은 미장센이 단순히 특정 장면의 이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다. 《잠입자》에서 타르코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마찬가지로 신성의 문제와 인간의 믿음에 대한 탐구를 영화의 중심에 두고 있다.


영화 속 '존'이라는 공간은, 물화된 신성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곳에 들어가는 세 인물—잠입자, 작가, 과학자—는 각기 다른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은 이 여행의 첫 순간부터 고조된다. ‘존’에 들어가는 행위는 그들의 내면을 노출시키는 동시에, 그들 각자가 지닌 믿음의 본질을 드러낸다. 잠입자는 이 공간을 신성한 곳으로 여기며, 이곳에서 인간의 깊은 욕망과 두려움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와 과학자는 각각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불신과 의심은 이 여행의 핵심 갈등을 형성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에서 인간이 신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탐구하면서, 믿음과 불신 사이의 긴장감을 심미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잠입자가 말하는 "믿음의 기관이 쇠퇴해버렸다"는 표현은 인간이 신성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현대 사회의 문제를 상징한다. 잠입자는 이러한 현실에 절망하며, 인간이 더 이상 신성한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고통을 드러낸다. 이는 타르코프스키가 《잠입자》를 통해 신성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인간이 신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적 세계관에서 ‘지질학적 공간’으로서의 존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타르코프스키가 영화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지질학을 공부한 것은, 그의 영화에서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잠입자》의 존은 심미적이며 종교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공간으로서, 타르코프스키의 철학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의 내면과 그들이 신성을 이해하는 방식을 반영하며, 타르코프스키는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한다.


이 영화에서 타르코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영화적으로 구현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을 미학적, 윤리적, 종교적 단계로 나누며, 인간이 이러한 단계를 통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잠입자》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이 실존의 단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등장인물들의 여정을 통해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잠입자는 존으로의 여정을 통해 신성에 도달하려는 인물로, 그는 신앙과 구원을 탐구하는 인물이다. 존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믿음의 도약’을 상징하며,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불안을 직면하고 초월적 신념을 통해 구원을 찾는 과정을 나타낸다.


영화에서 작가와 과학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윤리적 단계를 탐구한다. 작가는 예술과 창조를 통해 진리를 찾으려 하며, 과학자는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은 실패로 끝나며, 이는 키에르케고르가 윤리적 단계의 한계를 지적한 것과 일치한다. 그들은 이성적 접근만으로는 신성에 도달할 수 없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믿음의 도약’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결말에서 타르코프스키는 방의 문턱에서 세 인물이 방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이 신성과 대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신앙적 도약임을 시사한다. 잠입자는 자신이 믿는 것을 실현하려 하지 않고, 대신 타인을 위해 희생하며, 이 과정에서 신성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신성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 않으며, 방이 지닌 신성한 본질을 끝내 드러내지 않는다. 카메라는 방의 시점으로, 신의 시점으로 제시되며, 이로 인해 방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 공간으로 남는다.


타르코프스키는 키에르케고르의 윤리적 단계와 종교적 단계를 탐구하면서, 인간 실존의 불안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다. 《잠입자》는 철저히 유신론적이며 실존주의적인 영화로, 도스토예프스키와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주제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적 세계관 속에서 통합된 걸작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에서 인간의 믿음과 신앙, 그리고 신성에 대한 탐구를 심미적이고 철학적으로 그려내며, 《잠입자》를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시킨다.


영화의 결말에서 등장하는 잠입자의 딸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철학을 더욱 복잡하고 심오하게 만든다. 그녀의 초능력은 인간이 '존'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초월적 상태를 상징하며,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넘어 신앙적 믿음을 통해 초월적 존재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장면을 통해 종교적 단계에서의 ‘믿음의 도약’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신앙심의 극점에 도달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결국, 《잠입자》는 타르코프스키의 철학적 성찰과 심미적 탐구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신앙의 문제를 심오하게 탐구한다. 이 영화는 인간의 내면과 신앙, 그리고 신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낸 타르코프스키의 걸작으로 자리잡는다. 《잠입자》는 인간이 신성과 대면할 때 직면하게 되는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세계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통찰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4. <거울> - 기억의 회상과 인간의 실존


<거울>(1975)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이며, 동시에 가장 철학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기억과 회상을 통해 인간 실존의 본질을 탐구한다. <거울>은 비선형적 서사 구조와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이 뒤섞여 있는 독특한 영화다.


<거울>은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한다. 이 영화는 기억이 인간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며, 그 기억이 인간의 실존적 위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다룬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이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며, 그 기억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결정짓는지를 탐구한다.


<거울>은 인간 실존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로, 타르코프스키가 추구하는 예술적 목표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지를 시적으로 표현한다. 타르코프스키는 기억과 시간의 문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은 질문에 답하려 하며,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인간 실존의 본질을 탐구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1975)는 그가 남긴 작품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영화로,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철저히 거부하며 시간과 기억, 꿈과 현실을 뒤섞어 하나의 거울 같은 세계를 창조해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알렉세이의 회상과 꿈, 그리고 그의 아들 이그나트의 시선을 통해 전개되며, 이야기의 시간적 흐름은 완전히 파편화되어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요구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40대의 남자인 알렉세이로, 그는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 어머니와의 관계, 자신의 아들 이그나트와의 관계 등이 엉켜들며 하나의 복잡한 내면적 세계를 구성한다. 영화는 여러 시간대—알렉세이가 5살 무렵의 1930년대, 10살 무렵의 1940년대, 그리고 현재의 1970년대—를 오가며 서사를 전개한다. 이 불연속적인 내러티브는 관객에게 시각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동시에, 시간의 연속성보다는 회상과 꿈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영화의 구조는 마치 ‘거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여러 시퀀스와 에피소드들이 서로를 반사하고 투영하며 얽혀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개인의 기억과 꿈이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현실이 그 기억과 꿈을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알렉세이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회상에 그치지 않고, 그의 아들 이그나트에게까지 이어진다. 이그나트는 어머니 나탈리아와 함께 살아가면서 알렉세이의 어린 시절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며, 이는 한 세대의 기억이 다음 세대에 어떻게 투사되는지를 암시한다.


영화의 인물 구성에서도 이러한 투사와 반사가 드러난다. 주인공 알렉세이의 어머니 마루샤와 나탈리아를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은, 이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연결된 존재임을 암시한다. 마루샤와 나탈리아의 외적 동일성은 시간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유사성과 반복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알렉세이의 기억은 이그나트에게로 전이되며, 두 인물은 전기적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서로의 경험을 반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타르코프스키는 다큐멘터리 필름 시퀀스를 삽입하여 개인적인 기억과 역사적 사건을 병치시킨다. 스페인 내전, 히로시마 원자폭탄, 중국의 시위 등 세계적인 사건들이 알렉세이의 회상 속에 등장하며, 그의 개인적인 불안과 결핍이 어떻게 보편적인 인류의 고통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개인의 기억이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적이고 인류적인 차원으로까지 연결된다는 타르코프스키의 시각을 드러낸다. 결국 영화는 개인의 불안이 어떻게 전체 인류의 불행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에서 시간-이미지라는 개념을 통해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가상과 실재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공존시키며, 새로운 형태의 영화적 시간을 창조한다. 이는 들뢰즈가 말하는 ‘크리스탈 이미지’와 연결되는데, 크리스탈 이미지는 시간의 층위가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울》은 이러한 크리스탈 이미지를 통해 타르코프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영화적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타르코프스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과거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어린 알렉세이, 여동생이 숲을 거니는 장면이 현재의 어머니 마루샤와 교차되며, 두 시간대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상충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핵심을 시각적으로 압축한 것이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적 철학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그 시간들이 서로를 비추고 반사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결국 《거울》은 타르코프스키의 개인적인 자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기억과 시간, 그리고 자아 정체성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담은 작품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를 통해 예술이 현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며,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하나의 결정체적 이미지로 융합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거울》은 시간의 잠재태와 현재태를 충돌시키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크리스탈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현실과 꿈,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인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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