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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Dec 08. 2018

아이디어를 더 빨리 검증하고 테스트해볼 수 없을까?

스프린트, 구글 벤처스의 기획 실행 프로세스

아이디어를 더 빨리 검증하고 테스트해볼 수 없을까?


17년도 초 유아식품 정보 플랫폼 '맘마'를 사업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생각이다. 초기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많은 인터뷰를 진행해보기도 했지만 아이디어의 가능성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맘마가 소위 말해 '먹히는' 아이디어라는 확신을 주진 못했다. 아니, 가질 수 없었다가 정확한 것 같다.


('맘마'에 관해 쓴 브런치 글)


아이디어가 검증되지 않아서 발생한 불확실함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맘마는 결국 중단됐다. 순전히 나의 결정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팀원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 맘마를 그만하자고 결론 내린 과정이 너무나도 독단적이었기 때문이다. 중단 자체는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과정에 있어서 옳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망했다. 


아이디어에 대해서 제대로 검증은 물론이고 테스트도 못해보고 끝났다. 많은 노력을 했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내 새끼'를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고 몇 달을 속으로 우울해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맘마에 대한 작은 아쉬움만 남아있던 나에게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던 디자이너인 친구가 책 한 권을 대뜸 추천해줬다. 약 2년 전 그 당시 나의 고민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브런치 글을 보고 번뜩 떠올라서일까. 그 친구의 속은 모르겠지만 본인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책을 어딘가에서 듣고 와 나에게 추천해줬다. 생각해보면 독서와 거리가 멀던 나에게 <카피 책>을 추천해준 것도 이 친구였는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잘 캐치해서 제안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스프린트>

그 친구가 추천해준 책은 바로 <스프린트>라는 책이다. <스프린트>는 구글 벤처스에서 탄생한 프로젝트 수행방법과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테스트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 책이다. 그런데 그 기간이 너무 짧아서 불가능하다는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책을 읽고 사례에 대해 살펴보면 이보다도 아이디어를 더 빨리 테스트하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스프린트 말고는 없을 것 같다.


책에는 스프린트 방식에 대한 강한 확신을 심어주는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구글 벤처스는 대표적으로 미디엄, 블루보틀, 슬랙 등의 스타트업들과 스프린트를 진행했는데 다양한 스타트업들과 100건 이상의 스프린트를 진행하면서 절차를 실험하고 그 결과를 검토하여 개선방법을 찾았다.


내가 생각했을 때 스프린트의 가장 큰 장점은 진짜처럼 보이는 프로토타입이다. 겉보기에는 진짜 건물 같지만 안은 텅 빈, 외관만 보이도록 제작된 세트처럼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단기간에 말이다. 실제 스프린트의 5일간의 계획하에서는 4일 차에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5일 차에 이를 테스트한다.


드라마 세트장

물론 좀 더 완벽한 프로토타입을 구축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프로토타입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기까지의 시간이 늘어날 뿐이다. 제대로만 가고 있다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보면 모든 아이디어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엉뚱한 아이디어를 놓고 모험하는지, 혹은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그저 확신하지 못하는지 일찍 아는 편이 낫다. 부적절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진짜 바보짓이다.


프로토타입 준비에 며칠 혹은 몇 주를 쓰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추가로 공을 들여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그러는 동안 실패할지도 모르는 솔루션과 더 깊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또한 프로토타입은 질문의 답을 얻으려는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점을 유지하고 완전히 기능하지 않아도 진짜 같은 제품을 만들면 된다.

블루보틀의 프로토타입

구글 벤처스가 블루보틀과 스프린트를 진행할 당시 그들은  키노트(Keynote)를 활용해 실제 웹사이트처럼 보이는 일련의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약간의 창의력만 발휘해 화면들을 이어 붙여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처럼 거창하지도 않고, 누구나 만들 수 있으며,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한다면 진짜 같은 프로토타입으로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테스트를 거쳐 유의미한 데이터를 뽑아내기까지는 단 이틀이면 충분하다. 그전에 프로토타입을 통해 해결할 문제와 솔루션을 결정하는데 3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어쩌면 마지막 이틀보다 앞선 3일이 더욱 중요하지만 아이디어와 솔루션에 대한 개략적인 생각이 있었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마지막 이틀은 스프린트의 정수로 느껴졌다. 3일간의 과정을 나는 오랜 기간에 거쳐 터득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단 이틀이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스프린트를 통해서 5일이면 문제 정의부터 솔루션 도출, 프로토타입 제작, 테스트까지 모든 과정을 빠르게 진행해볼 수 있다.

월요일에는 문제를 지도로 나타내고 초점을 맞추어야 할 중요한 부분을 선택한다. (문제 정의)

화요일에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솔루션들을 쏟아낸다. (솔루션 도출)

수요일에는 솔루션을 선택하고 아이디어들을 테스트 가능한 가설로 바꾼다. (솔루션 선택)

목요일에는 진짜 같은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프로토타입 제작)

금요일에는 진짜 고객을 대상으로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한다. (테스트)


각각의 요일마다 해야 할 일들은 명확히 정해져 있다. 월요일에는 문제만 정의해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며 솔루션까지 생각해서는 안된다. 화요일에 솔루션에 대해 생각할 때도 다양한 제약들이 존재한다. 서로 토론하며 브레인스토밍을 해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솔루션에 대해 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다양한 관점의 다양한 솔루션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수요일에는 화요일에 생각해 낸 솔루션들을 모아 두고 한꺼번에 비판하는 시간을 갖는다. 개별적인 다양한 솔루션들을 비판하고 삭제해가면서 최상의 솔루션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문제 정의부터 시작해 최상의 솔루션을 결정하고 나면 드디어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각각의 요일마다 해야 할 일들을 명확히 하다. 그렇기 때문에 팀이 궤도에서 이탈할 때는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제약 속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제약이 아니다. 단지 팀이 한 가지 요일마다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게 하여 집중시킴으로써 최상의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5일간의 스프린트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출시해도 될 만큼 완벽하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구현된 제품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속한 진전을 이룰 것이고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최고의 아이디어들이라도 실세계에서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아이디어를 구현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노력을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스프린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히 제시해줄 것이다.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테스트해볼 수 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된다.


스프린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린 개발 방식, 애자일 프로세스, 디자인 사고 등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그렇지만 스프린트가 가장 끌리는 이유는 5일이라는 제한적인 시간 안에 우리를 가두어 놓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마다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해 다른 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것도 한몫한다. 


이렇게 제한적인 시간과 압박감 속에서 아이디어를 내어놓고 솔루션을 생각하며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꽤나 버거워 보인다. 그렇지만 인간은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 시간이 촉박할 때 최상의 결과물을 내어 놓지 않았던가. 스프린트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잘 활용한 게 아닐까?


스프린트가 좋은 기획 프로세스임에는 틀림없다. 그 이유는 항상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프린트를 통해 잃는 것은 5일이라는 짧은 시간뿐이다. 그리고 이 5일에 대한 보상은 조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나의 아이디어들이 도움이 될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스프린트도 다른 기획 프로세스와 스타트업 방법론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프린트가 최상의 방법이라는 생각보다는 다양한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고 스프린트가 적용된다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때만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최근 열정을 가지고 본인의 아이디어로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친구가 있다. 때마침 스프린트에 대해 공부 중이었던 터라 그 친구의 아이디어를 통해 스프린트를 진행해보고자 했으나, 군대에서 휴가를 나가는 나와 그 친구의 시간이 맞는 5일이라는 시간이 없어 스프린트를 진행해보진 못할 것 같다.


당장이라도 스프린트를 진행해보고 싶지만 아직 군인 신분인 나로서는 제한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스프린트> 책을 소개해줬다.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스프린트 관련 웹사이트]


참고서적 

<스프린트>, 제이크 냅, 박우정 옮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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