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밤을 듬뿍 짜 입술에 덕지덕지 발랐다.

by 작가 손누리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 유튜브를 통해 배우 황보라의 임신 도전기(성공기라고 말해야 할까?)를 접했다. 마흔두 살에 임신을 준비하면서 나이도 나이이지만 신체적인 조건으로 임신 성공률이 1%라는 병원의 의견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절망했겠지만 그녀는 웃으면서 시험관에 도전했다.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직접 배에 과배란 주사를 놓고, 열 종 가까이 되는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아기가 언젠가 꼭 와줄 것을 알기에 슬퍼하지 않는다고 했다. 간절하게 아기를 원하고 기다리는 그녀에게서 보였던 건 집착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임신에 성공했을 때 누구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녀는 예쁜 아기를 품을 준비가 충분히 되었던 사람이다.


관련 영상들을 계속 찾아보면서 나는 그녀의 매력에 푹 빠졌다.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이렇다. (주로 내가 가지지 못한 모습들인데) 쉴 새 없이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 평소 기분이 다운되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보고 느끼는 것들, 생각들과 감정들을 풍부하게 표현한다. 재치 있는 그녀가 하는 말을 듣는 게 재밌다. 자기 관리가 뛰어나다. 그녀의 반짝거리는 피부와 매끈한 입술을 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화장대 한 구석에 몇 년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반 이상 남아있는 립밤을 듬뿍 짰다. 입술에 덕지덕지 발랐다.


나는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깨달았다.

‘나는 행복해야 한다.‘


나는 행복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 내가 왜 불안한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고민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면서 나를 아껴주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거울 보고 웃는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일상에서 자주 못 웃는 나는, 하여튼 매사 뭐가 그리 심각하다. 아무튼. 지금 이 상태에서 행복해지지 않으면 어떤 변화가 와도 똑같을 거고, 도돌이표처럼 이 고민들이 반복될 걸 직감으로 알았다. 그렇게 되면 정말, 그때는 정말 불행할 것 같다. 행복한 나를 먼저 만들고, 더 행복해지기 위한 변화들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드디어 안개가 걷혔다. 제자리걸음만 하게 했던 내 머릿속 안개들이 하나씩 걷힌다. 그리고 이제 뭘 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하나씩 행동하기. 이를 테면 립밤 듬뿍 바르기, 얼굴에 난 여드름 살피기, 언제부터 이런 엄한 표정을 장착하고 있었는지 반성하기, 샤워하기, 바디로션 바르기, 무언가 생각났고 놓치기 싫다면 바로 기록하기, 하나씩 할 수 있는 걸 하기. 단, 억지 행복에 집착할 생각은 없다. 고독, 사색, 몽상, 외로이 있기는 내가 타고난 천성이다. 나를 만들고 나다움을 이루는 내 특성들을 너무 어둡지 않게만 가꾸어 나가는 게 관건이다.


며칠 전 보고 온 타로에서 알게 된 내 생일카드는 ’DEATH‘. 키워드는 ‘종료와 변환’, ‘돌이킬 수 없는 변화’, ‘끝,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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