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은 ‘떠남’ 그 자체에 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행위, 그래서 일단 떠나온 것만으로 그 여행은 완전한 것이 된다.
예전에는 설렘 가득했던 여행에서 실망하는 일이 많았다. 뭔가 특별한 것을 얻으려고, 혹은 남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단번에 인생을 바꿔줄, 어떤 깨달음이나 잊지 못할 사건을 만나게 되리라 기대하면서.
몇 번의 실망을 거듭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뭐가 되었든 크게 새롭거나 놀랄 것, 또 특별할 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막상 겪어보면 별 것 아닌 풍경, 장소, 음식, 경험일 때가 많다. 이 사실을 한 번 인정하고 나면 여러모로 애쓰지 않고 그저 흐르는 대로 여행의 시간을 즐기게 된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는 데서 ‘반짝’하는 순간이 가끔 있곤 하는데 요즘엔 그런 순간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최근 몇 번의 여행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중 하나를 떠올려보자.
배낭 메고 떠난 호주여행에서 우린 한 달간 드넓은 땅 이곳저곳을 다녔다. 코랄 바다에 뛰어들어 색색깔 빛나는 산호초를 눈에 담았고, 바다를 가르는 요트에 누워 쨍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온전히 누리는 여유도 부렸다.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껴볼 수 있었던 숲과 바다, 사막 그리고 여기에 사는 살면서 딱히 볼 일 없는 신기한 동물들까지. 확실히 이례적인 경험을 했다. 물론 재미있고 인상적이었으나 나의 ‘진짜 만족감’은 다른 곳에서 왔다. 웃기게도 호주 땅 여기저기를 다니느라 숙소를 자주 옮겨다닌 일에서다.
며칠씩 잠시 묵고, 금방 다른 숙소로 옮겨야 하는 일정 탓에 우리는 ‘짐싸기 고수’가 됐다. 꾸러미들을 여기저기 풀어놓지 않아야 다시 짐을 쌀 때 잃어버리는 물건이 없다. 필요한 것들만 꺼내 놓고 사용한 물건은 꼭 같은 자리에 놓았다. 배낭의 공간은 한정적이었기에 쓸데없이 짐을 늘리는 소비는 자제했다. 차곡차곡 짐을 다 담기 위해 테트리스 하듯 짐싸기의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찾았다.
또, 숙소를 비울 때 청소하는 시간을 줄여보려고 어지른 건 바로 치우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아주 사소한 이런 것들. 일어나 이부자리 정리하기, 먹고 나면 바로 설거지하기,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곧장 쓰레기통으로… 누군가에게는 매우 당연한 생활양식일 테지만 뭐든 ‘내킬 때‘, ’몰아서‘ 하는 나에게는, 특히나 쉬려고 떠난 여행에서, 이런 행동들은 아주 부지런한 움직임에 속했다. 정돈된 공간에서 머무는 기분은 꽤 좋았다. 집에 돌아가서도 이렇게 살아보자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여행하는 한 달간 연습이 됐는지 지금은 일상에서도 살림살이를 간소하게 하고, 주변 정리를 습관으로 하는 생활을 유지 중이다.
내 삶의 작은 변화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뜬금없고 놀라운지… 특별한 사건, 색다른 경험이라는 거창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게 되는 이유다. 어디를 가며, 무얼 보고, 하고, 어떤 걸 먹느냐 하는 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떠나온 것만으로 이미 다른 삶의 방식으로 뛰어든 것이니까. 일상을 벗어나는 그 자체로 새로운 영감과 삶의 방식을 발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제 나는 여행에서 억지로 감흥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낯선 곳에 있는 나를 뿌듯한 마음으로 즐길 뿐이다. 여행은 떠남과 동시에 완성이니까, 내가 뭘 더 노력할 건 없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