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중국 최대의 건축물인 만리장성을 처음 방문한 것은 대학생이였을 당시로,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친구에 의지해서 갔었던 터라, 여러 군데의 장성 중에 어떤 곳을 방문했었는지 어떻게 그 장성까지 갔었는지 기억에 없다. 안타깝지만 그리고 부끄럽지만, 만리장성을 다녀왔다의 정도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여행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의지와 능동성이 얼마나 포함되었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잔상이 오래남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 느낀것이지만, 동행자에게 크게 의지할 경우에는, 내가 걷고 있는 길과 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였는지 나중에 그 시간을 돌아봤을 때, 직접 지도를 보아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했던 시간과 비교해서는 뚜렷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베이징 근교에 위치해있고 보존이 잘 되어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에 한 곳인 팔당령八达岭长城을 스페인 친구와 함께 다녀왔다.
베이징 근교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수이탄积水潭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여를 가야 팔달령장성에 도달할 수 있다.
가시거리가 좋은 정도는 아니였지만, 따뜻한 햇살이 있어 장성을 걸으면서 주변 경관을 천천히 둘러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우선 팔당령장성에 도착하면 만리장성을 올라가는 방법의 선택지앞에 놓이게 된다.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 슬라이딩카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 중국의 어느 유적지를 가더라도, 꼭 돈을 쓸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놓은 것이 중국 여행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고지대에 위치한 유명한 문화유적지 혹은 높은 산을 가게 되면, 내 두 발로 올라가는 방법 이외에 돈이 비싸지만 아주 편하게 등산을 하거나 관람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대부분의 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아침 일찍 여행의 일정을 시작해도 하루로 끝나지 않을 경우는, 문명의 혜택에 힘입어 케이블카와 같은 편리함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여행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관람하거나 높은 산을 오르는 방법론에 있어 나의 생각은, 어떻게든 내 두 발로 걸으면서 그 곳을 느껴보는 것.
정상을 다녀오는 것만이 목적이 되기 보다는, 정상을 오르면서 두 발을 딛고 서있는 곳과 땀을 흘리며 친밀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 여행을 함에 있어서는 언제나 편리함의 유혹에 빠지게 되지만, 그 유혹은 내 여행의 의지로 뿌리치거나, 아니면 비싼 입장료 혹은 이용료앞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중국을 여행하는 자들이 염두해두어야 하는 한 가지가 아닐까 한다.
새벽같이 베이징 지하철역에서 팔달령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한 덕에, 관광객들이 꽤 많아지기 전에 팔당령에 도착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팔당령장성을 볼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걸어서 올라가게 되면 4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는 대답을 듣고는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을 택했다.
걸어서 올라가게 되면 팔달령장성의 입구에서는 또 다시 오른쪽 길을 갈 것인지, 왼쪽 길을 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한다. 우리는 왼쪽 길이 오른쪽 길에 비해 사람이 적어보여 왼쪽 길을 선택했는데,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엿들으니 왼쪽 길은 오른쪽 길보다는 가파르다고 한다. 왼쪽 길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길까지 간 후에야 다시 되돌아왔는데, 그 길에서 음악을 틀고 신나게 춤을 추는 중국인 여자를 목격하게 되었다.
아무리 세계문화 유네스코에 지정된 곳이기는 하지만, 그 광경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는 즐거움으로 느껴졌다.
물론 다른 이들은 이 광경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공공장소에서도 이어폰을 끼지않고 통화를 하거나 노래를 듣는 등의 많은 중국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행동과 동일시하여 생각했을까?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 광경이 즐거움으로 느껴진 이유는 베이징이 이번 중국 여행의 첫 시작점으로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날 만리장성을 둘러보는데 함께 동행한 흥많은 스페인 친구는, 크게 들리는 음악소리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고, 광활한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려고 하자, 음악소리에 맞처 흔들던 동작을 더 크게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이 것이 세계문화 유네스코로 지정된 중국의 최대 건축물에서 내가 춤을 추게 될 계기가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스페인친구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 친구가 내 사진을 찍어주는 순서가 되자 나 역시 몸을 소심하게 흔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나게 춤을 추던 중국인 여자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함께 춤을 추자는 예상하지 못한 제안을 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일년을 살았을 때나, 이번 여행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중국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에 크게 개의치않고 무심한듯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좋은 친화력도 갖고 있다. 그렇게 느낀 중국인의 친화력이 이 만리장성에서 발휘가 될 줄이야.
그렇게 오랜만에 방문한 만리장성에서 잊지못할 시간을 만들게 되었다. 아니, 춤을 추게 되었다.
더 이상의 길이 이어지지 않는 막다른 길 앞이라,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있지않고 드문드문 있었지만,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래도 세계 문화 유네스코로 지정된 문화재에서 내가 뭘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긴했다.
물론 낙서를 하는 등의 문화재 훼손을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였고, 대략 1분여간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아주 짧은 시간이였지만, 마음속 한켠에는 죄의식도 함께 느껴졌음이 솔직한 심정이였다.
하지만, 이런 저런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단순히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앞서서 다양한 중국인들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어쩌면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대륙적 기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이 어떤 것의 우월성의 관념으로 여겨지기 보다는, '다름'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여행자가 가져야할 태도가 아닐까한다. 그렇게 흥나는 만리장성은 케이블카와 슬라이딩카를 전혀 타지않고 반나절에 둘러볼 수 있었다.